<화요세평> 빼앗긴 마음
화요세평

<화요세평> 빼앗긴 마음

한은경 심리학 박사·임상심리 전문가
방황하는 국민의 행복추구권
나눠 먹는 사과가 더 맛있다

월요일 아침은 밤새 쌓인 눈을 치우고, 금요일 오후에는 얇은 상의 하나로 외출이 충분하며, 주말에는 흐드러지게 핀 목련을 본다. 꽃과 잎이 피는 것을 샘하느라 중늙은이 얼어 죽을 정도로 날씨가 춥다가도 부지깽이라도 꽂으면 다시 살아날 만큼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 변화무쌍한 자연의 섭리 앞에 친위쿠데타로 인한 국민 불안 증후군, 즉 '내란병'은 한겨울과 봄을 훌쩍 지난 채로 여전히 맹위를 떨구고 있다. 국민의 행복추구권은 길을 잃은 채 방황한다.

우리는 주권침탈의 경험이 DNA에 새겨진 민족이다. 근과거에는 참혹한 일제강점기가 있었고, 그 이전이나 이후에도 그리고 인공지능 어플을 사용하는 2025년에도 여전히 DNA는 세대를 넘어 생존하고 있다. 어쩌면 진화했을지도 모르는 DNA는 인간 본연의 마음을 교묘하게 빼앗아 권리를 침탈하거나 침탈당하는 고통을 반복재생하고 있다.

1897년 독립신문 사설에 '조선병'이 등장한다. 이는 기생제도나 허례허식 등 당시 일상에 만연한 구태의연함이라는 생활의 병을 비롯해 외국에 나라를 팔거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어사, 관직을 돈을 주고 사는 등의 타락한 관료의 병, 그리고 법 제도의 병. 이 세 가지를 들어 당시 조선이 안고 있는 문제를 비판했다. 특히, 법 제도의 병은 재산이나 세력에 따른 상이 한 판결, 자의적 재판 진행, 백성에 대한 무자비한 고문과 연좌제 등 이른바 법 제도를 붕괴시키는 행태들에 대해 지적한다. 정부가 재판소를 설치하고, 산 사람의 가죽을 매로 벗길 지경이면 차라리 소 잡는 백정을 데려다가 재판관을 시키면 가죽 벗기는 일을 더 잘할 거라고도 했다. 법이 상식을 붕괴시키는 일들이 자행되는 2025년의 지금과 무엇이 다를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그 존재의 목적을 달성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주어진 제한된 시간 속에서 일과 관계에서의 만족을 추구하는 일상을 살아가면 충분하다. 그런데 이러한 만족이 타인의 일상에 의탁하거나 경계를 허물어 붕괴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내 앞에 맛있는 사과를 먹는 즐거움에 집중하지 못하고, 옆 사람의 사과가 더 맛있을 거로 생각해서 그 사과를 빼앗거나 더 맛있는 사과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몰되는 것이다.

맛있는 사과는 혼자 먹는 것보다 나눠 먹는 것이 더 맛있고, 사과를 먹고 싶어 하는 이에게 조각을 나눠줄 때 가장 맛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과를 구할 수 없는 이에게 사과를 줄 때는 사과를 먹지 않아도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러한 본연의 마음이 탑재되어 있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이 그 무언가에 빼앗긴 채로 주조되다 보면 어느 순간 퇴행에 이를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존재 의미나 가치가 끝없이 추락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이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채로 부정되는 경험이 반복될 때, 특히 자아의 형성이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어린 시절에 일어난다면 무방비상태에 있던 아이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나아가 세상 전반에 대해 퇴행할 수밖에 없다. 마음이 빼앗긴 것이다. 마음이 빼앗긴 채로 성장한 아이는 자신의 욕구 충족만을 고집하거나 타인의 욕구 충족에만 의존할 수 있고, 자신의 해석이 맞으니 굳이 타인의 마음은 헤아릴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생존과 안위를 위해서 타인이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왜곡을 반복하다 보면, 양심은 어느새 사라지고 욕구는 탐욕과 앙심이 되어 아이를 괴물로 변형시킬 것이다.

정신건강 기관을 찾는 이들에게서도 빼앗긴 마음의 이슈는 반복되고 있다. 스스로의 가치는 발견하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부정하면서 타인의 눈치만을 살피거나 그들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 지금 현재의 자신의 일상에 주의를 기울여 집중하는 패턴을 형성하지 못하고, 과거나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에 온통 에너지를 쓰는 삶의 방식이 자리 잡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학교와 단절된 채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청소년, 독립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니트족, 그리고 결혼하고서도 아이로 살아가는 어른들, 특히 최근에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ADHD)을 호소하는 이들에게서도 이러한 빼앗긴 마음을 볼 수 있다.

유리잔에 물방울이 떨어지다 넘치려면 한 방울의 물이 더 필요한 법이다. 나라를 팔아넘기는 매국노와 부패한 관료, 그리고 법 기술자라는 용어로 조롱당하는 지금의 법조인 마음속에도 그 한 방울의 물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을 테고, 범람을 막지 못한 마음의 역사 또한 있었을 것이다. 또한, 지금 현재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잔 속의 물은 얼마든지 넘칠 수 있다.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아끼고 돌보는 생활 패턴의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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