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팽목항 앞바다. 진도를 넘어 전국민의 마음에 또 한번 그날의 아픔이 요동친다.

살아있었다면 이제 20대 중후반을 넘겼을 세월호의 아이들. 10~20대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희생됐던 이태원의 젊은이들. 살아있었다면 대한민국의 주역으로 우리의 미래를 함께했을 이들에게, 그리고 살아 남아있는 우리들에게 '안전'은 우리의 가치여야 하고 국가의 책임이여야 한다. 우리 사회에 안전이라는 화두를 던진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의 세월 동안 우리의 안전은 얼마나 강고해졌을까.

상징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2월 7일 안전한 바다 이용을 위한 기초 해양안전 수칙과 비상대응 요령을 교육하는 '국민해양안전관'이 진도군 남동리에 개관했다.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국민의 해양안전의식을 높이고 해상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2015년부터 국비 270억 원을 투입해 이날 개관한 국민해양안전관은 세월호 참사 발생 9년 만에 진도 팽목항에서 불과 5백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 세워졌다.

국민해양안전관은 선박탈출, 바다생존법(엎드려뜨기 등), 익수자 구조, 선박대피 등 해상안전체험장과 해양직업, 응급처치, 소화기 및 풍수해·지진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각종 체험장을 비롯해 야외에는 어린이 해양안전(키즈풀) 체험시설이 갖춰져 있다. 개관은 작년 12월 7일에 했지만 정식 운영은 올해 1월부터이니 딱 10년 만에 '국민'해양안전관이 생긴 셈이다. 그러나 과연 저 시설로 해양안전과 재난안전을 체험하고 안전사고 예방과 대처능력을 강화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전대미문 해양참사 후 10년 만에 만들어진 '국민'해양안전관인데도 지역의 어디를 가도 찾아볼 수 있는 여느 체험장과의 차별도 없고 해양안전의식 고취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체험형 전문교육 시설이라고 말하기에도 전문성이 떨어진다. 더욱이 이곳을 운영하는 비용은 정부와 진도군이 각각 분담한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는 안전에서 이렇게 한발 물러서 있을 것인가.

'눈떠보니 선진국'이란 제목의 책이 나온 게 2021년이다. K-반도체, K-pop, K-조선, K-방역까지 (앞에) 'K'만 붙여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던 시기 우리는 말 그대로 '눈떠보니 선진국'이 되어있었다.

그중에서도 K-방역은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항 상태에 있을 때 대한민국만이 유일하게 감염병 유행 초기 광범위한 진단을 통해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한 의료방역시스템을 구축·운영하면서 세계적인 모범국으로 떠올랐고 여러 선진국에서 앞다퉈 우리의 의료 시스템을 배우고자 했었다. 대한민국 '의료 안전'이 우리를 선진국의 반열로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1~2년 사이 대한민국은 또다시 '눈떠보니 중·후진국'으로 전락했다. 2022년 10월 29일 159명의 희생자가 난 이태원 참사, 2023년 7월 15일 14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친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채 10년도 안 된 사이 우리는 '참사'를 두 번이나 더 겪어야 했다. 거듭되는 참사 속에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안전 대한민국에서 참사 대한민국으로 급상과 급락하면서 과연 대한민국이 선진국인 적이 있었는지, 대한민국을 과연 안전한 나라라고 할 수 있는지 가슴 깊이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근처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 붕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형 참사를 막은 시간은 '오직 90초'였다고 한다. 대형컨테이너 선박이 조난신호를 보내자 지체없이 경찰은 90초만에 행동에 들어갔고 긴급 무전을 통해 차량을 통제한 결과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난신고 접수 후 경찰 당국의 발빠른 통제. 긴급상황에 일사분란하게 대처하는 골든타임 확보 결과, 대형 참사를 막았고 안전을 지켜냈다.

2014년 대한민국은 304명의 소중한 국민을 잃었고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민안전처가 출범하였으며 전국 지자체에서는 도민안전실과 같은 안전 관련 부서를 만들었다. 그러나 2년 반 만에 국민안전처는 행정자치부로, 안전행정부로, 또다시 행정안전부를 왔다갔다하며 조직만 개편했을 뿐 정작 우리의 안전을 책임져 줄 사회 시스템을 개편하고 강고하게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대형 사고는 조직과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역할을 맡은 사람이 일을 제대로 안했기 때문에 터진 사고라고 보는 일반적인 시각도 있다.

세계 일류(世界 一流)와 선진국의 기준은 '안전'이 바로미터다. 안전이 없는 경제부국이 무슨 소용있을 것이며, 불안전한 강대국은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다시는 대한민국이 참사로 인한 안전 후진국으로 전락해서는 안될 것이며 국가는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가드의 역할을 단단히 해야한다. 강하게 바래본다. 다시는! 더 이상은! 안전이 무너지지 않는 대한민국이 되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