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에 있는 어느 계간지 신춘문예 당선자들과 대담을 가졌다. 한 사람은 평론으로 등단한 20대 후반의 남성이고 다른 한 사람은 시로 등단한 50대의 여성이었다. 그들이 인천과 서울에 살고 있어 우리는 줌으로 만났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화상으로 뭔가를 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직업군이나 가능했는데, 이제 줌으로 하는 수업이나 미팅, 대담이 일상이 되었다. 뭐 새삼스레 줌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줌은 이제 어린 학생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빠르게 적응하고 있으니 그만큼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나는 대담자인 청년의 솔직한 속마음을 듣고 나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세상이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신춘등단 소감이나 여타의 다른 질문이 오가는 끝에 본인은 꼭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도 낳아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데 그게 실현가능할지 미지수란다. 가장 큰 소망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결혼, 여러 상황을 보니 쉽지 않을 것 같다며 한숨을 지었다. 게다가 글을 쓴답시고 예술가의 길에 들어섰으니 누가 좋아하겠냐며 자조하듯 읊조렸다. 듣고 있던 우리는 꼭 결혼하게 될 거라며 응원했다. 안타깝고 씁쓸했다. 언제부터 결혼이 소망이 되어버린 세상이 되었는지 말이다. 결코 한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요즘 현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어른으로 일말의 부채감까지 들었다.

또 다른 대담자인 50대 여성은 대안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고 했다. 시에 대한 열망을 포기 못해 모든 것을 뒤로하고 7개월 동안 도서관에 파묻혀 독서와 습작에 매진했다고 한다. 오롯이 자신과의 내밀한 만남으로 충만했는데, 이렇게 등단까지 하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하지만 등단이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 몇을 예를 들며 그들이 부럽다고 덧붙였다.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있어 시란 무엇인가요? 했더니 그녀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삶의 의미라고 했다. 겨우내 땅속에서 움츠리고 있던 새싹이 순식간에 고개를 내미는 것처럼 그녀의 말이 싹이 되었다.

나는 오래 전 읽었던 책에서 만난 말을 그녀에게 해주었다. 작고하신 안병욱 교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기억한다. ?은이와 늚은이에 대한 이야기다. 나이는 젊어도 사고가 늙었으면 젊은이가 아니라 ?은이고, 나이는 먹었어도 사고가 유연하다면 늙은이가 아니라 늚은이라고 했던 말이다. 이 얼마나 희망적인 말인가. 생물학적 나이와 정신적인 나이는 꼭 일치하지 않다는 것을, 시대를 이끌었던 철학자가 말했다. 그 당시 어린 나도 크게 감동으로 다가왔던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사람들에게는 더 깊이 와 닿지 않을까싶다. 소설가 박범신 또한 '은교'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너의 젊음이 상으로 받은 것이 아니듯, 나의 늙음 또한 벌로 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한국문단의 거장이 될 두 신인과 두 시간 반의 대담을 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삶은 결코 빵으로만 살 수 없다는 명제를 다시 되새기며.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어제 있었다. 사전투표를 한 나는 아침 일찍 산책을 나갔다. 늘 걷는 산책로가 온갖 꽃들로 최고의 파티를 하는 듯 했다. 벚꽃은 이미 지고 있지만 그에 질 새라 피어나는 철쭉이 몽글몽글했다. 어디 철쭉뿐인가 담장에 개나리는 또 어떤가. 수줍게 피어나는 모양이 꼭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들 같아 더 사랑스러웠다. 나는 걷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땅을 내려다보기를 좋아한다. 그러다보면 얼른 눈에 띄지 않았던 수수한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손톱만한 보라색 꽃부터 조금 더 큰 민들레꽃 등등 수많은 꽃들로 가득한 땅과 하늘이다. 자연의 대향연이 이 봄에 펼쳐지고 있음을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는지. 봄은 인간의 계절이 아니라 온전히 자연의 날것이 오롯이 숨 쉬는 계절임에 틀림없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겸허한 자세로 자연에게 머리를 숙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