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매광장>독일의 제3당 자유민주당과 우리 정치
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한반도 미래연구원장


독일에서 제3당의 대표적인 존재는 자민당(자유민주당·FDP)이다. 자민당은 자유주의 이념을 최우선으로 한다. 반면 거대 양당인 사민당(사회민주당·SPD)과 기민당(기독교 민주연합· CDU)은 각각 사회민주주의와 기독교 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다. 자민당은 이념과 노선에서 사민당과 기민당의 중간 위치이며,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독일의 대표적인 중도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독일 통일 전까지 옛 서독에서 거대 양당인 기민/기사당과 사민당은 각각 전체 의석의 40~45% 수준을 확보했다. 반면에 제3당인 자민당의 의석 숫자는 매번 전체 의석의 7-10%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소수 정당인 자민당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1990년 독일 통일 때까지 41년 중 34년 동안 집권 여당의 지위를 누렸다. 기민당(형제당인 기사당과 함께)이 단독 집권한 4년(1957-1961)과 기민당과 사민당이 대연정을 구성한 3년(1966-1969)을 제외한 34년의 정치사는 자민당이 기민당을 선택하면 기민당·자민당 정부가 들어섰고, 사민당을 선택하면 사민당·자민당 정부가 들어서는 방식이었다.

통일 때까지 34년 여당 지위

독일 통일 후 제3당의 숫자가 증가했다. 통일 후에도 양대 정당인 기민당이나 사민당은 극우 정당을 제외한 자민당, 녹색당 등과 연정의 방식으로 정부를 구성했다. 자민당은 1990년 통일 후 현재까지 34년 중 23년 동안 집권 여당의 지위를 누렸다. 자민당이 연정에 참여하지 않은 시기, 즉 2007~2009년과 2013~2021년은 기민당과 사민당이 대연정을 구성한 시기이다. 통일 전인 1966~1969년의 경우처럼 거대 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이 대연정을 구성한 것은 자민당이 양대 정당인 기민당이나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마지못해 행한 것이었다. 이렇게 자민당은 소수 의석을 가진 제3당 신분이었지만 통일 후에도 독일 정치에서 계속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물론 자민당의 이런 정치행태에 대해서는 비판도 많이 제기되었다. 어부지리만을 노리는 정당, 혹은 배신을 일삼는 정당 등의 비판이 가해졌다. 더 나아가 의석 규모에 따라 권력을 나눠 갖는 독일식 정치제도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나눠먹기식 정부 구성은 독일만이 아니라 내각제를 취하고 있는 유럽 대부분 국가의 보편적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나눠먹기식 정치를 한다고 해서 독일이나 다른 유럽국가의 정치가 비능률적이거나 부패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독일은 이런 방식의 정치로 라인강의 (경제) 기적을 이뤘고, 통일도 달성했다. 유럽 대부분 국가는 이런 방식의 정치로 선진 복지국가를 건설했다.

좌파정당인 사민당과 우파 정당인 기민당의 대연정은 독일 정치의 유연성을 잘 드러내 준다. 예를 들면 1966년 서독에서 최초로 대연정을 구성한 기민당 출신 키징거 총리와 사민당 출신 브란트 부총리는 우리 말로 표현하면 물과 기름만큼이나 이질적이었다. 양당의 이념과 노선 자체가 크게 다른데 덧붙여, 키징거는 나치당 경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브란트는 나치에 항거하다 14년 동안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또 통일 후 기민당과 사민당의 두 차례에 걸친 대연정은 모두 극우 정당(나치당)이나 극좌 정당(민사당)을 배제하기 위한 절제력의 결과였다.

다양한 정치세력 국회 진출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내각제를 선택하고 있는 독일이나 다른 유럽국가들의 정치형태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거국내각을 구성한 사례가 있다. 이승만 정부에서 농림부 장관을 지내면서 농지개혁을 주도한 조봉암 씨는 과거 공산당에 참가했고 정부 수립 당시 사회민주주의자였다. IMF 위기 극복 등 많은 성과를 낸 DJP 공동정부의 사례도 눈여겨봐야 한다. 두 사례 모두 긍정적 평가를 받았으며, 이런 역사적 경험은 모두 당시 제3당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한민국 앞에는 어려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정파들의 경쟁은 숙명적인 것이지만, 초저출산 문제나 한반도 위기 등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타협도 하고 양보도 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처럼 양대 정당이 극한적 대립을 하고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데 몰두하는 한 그런 협력이나 타협 정치는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지긋지긋한 악마화 정치를 청산하고 우리 정치문화의 개선을 위해서라도 제3당 등 다양한 정치세력이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 4월 총선에서 제3당들이 적절한 의석을 확보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국론 분열까지 일으키는 극단적 대립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국가의 중요사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국민통합에 이바지하는 정치문화가 조성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