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광주·전남 ‘통 큰 합의’에 부쳐
정진탄 논설위원

이번 달초 열린 강진만 갈대축제 현장은 ‘가을 100%’로 방문객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축제 질서도 좋았지만 바람 따라 흔들리는 갈대는 도시에선 전혀 느낄 수 없는 서정성을 만끽하게 했다. 축제 현장 방문 당시 초대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듣게 된 호사는 잊을 수 없다. 이곡 하나로 방문객들은 하나가 되는 순간을 맞았다. 이제 하루가 지나면 10월의 마지막 밤인데, 이 노래가 전국의 많은 곳에서 불릴 것 같다.

음악은 지친 이성을 탁 풀리게 하고 너와 나가 구분되지 않는 순간을 제공하는 신비한 것이다. 옛날 ‘풍악을 울려라’는 말이 와전되며 부정성을 함축하지만 그 자체 의미는 크다고 하겠다. 풍악이 울리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문화예술이 펼쳐지는 자리엔 늘 대동단결을 모색하는 성질이 있어 허투루 넘겨선 안 된다.

단체장 간 문화예술행사 축하

광주·전남 광역단체장은 문화예술의 행사, 축제장에서 조우하는 일이 흔치 않아 아쉽다. 폐막이 가까워지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와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등의 개막식 당시에도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는 각각 상대지역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연히 악수하는 장면도 연출되지 않았고 담소를 나누는 장면도 없었다. 부득이하다면 축하 영상메시지라도 보낼 수 있었건만 그러지 않았다. 이웃 행사를 진정으로 축하해주는 것은 요식행위가 아닌데 매우 애석한 일이다.

행사장에서 마음을 서로 나누는 일은 협상테이블에서 이성에 의존하며 논의하는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우리가 잘 아는 ‘조문정치’도 같은 성격을 갖는데, 궂긴 곳에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기는 것이다. 꼬인 관계 및 현안사업 애로를 푸는 기회의 장이다. 이런 곳에서 우리는 다른 정신적 기능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동연 경기지사, 유정복 인천시장이 김 지사측 장례식장에서 만나 3개 지자체에서 신경전을 벌인 대중교통 지원 사업, ‘기후동행카드’와 관련한 오해를 풀고 서로 갈등을 해결해가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한다.

광주와 전남이 지금 크게 부딪히고 있는 문제는 군공항 이전, 이와 연계된 민간공항 이전일 것이다. 얼마 전엔 광주~나주 광역철도의 노선 변경 추진으로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 당장 공항 이전 문제에 집중해보면 이 문제는 입장차가 워낙 커서 여간해서 풀리기 어려운 성격을 지닌다.

광주와 전남, 두 지역 광역단체장이 통 크게 접근해 공항 이전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하지만 여태 공항 이전을 위한 예비후보지조차 선정하지 못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날선 공방이 오간다. 광주시는 전남도가 군공항 이전 후보지를 우선적으로 결정해줘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전남도는 군공항 이전 로드맵을 정해놓고, 그러니까 무안으로의 군공항 및 민간공항을 동시 이전 입장을 고수하며 압박하고 있다. 이 와중에 이전후보지로 거론되는 무안뿐 아니라 함평 주민, 그리고 해당 기초지자체장의 입장이 엇갈리고 뒤섞여 있다.

이러다 보니 통 크게 하기는커녕 눈앞 이익충돌로 광주와 전남이 한 뿌리란 인식 토대는 무너지고 발전 전략은 생성되지 않는다. 단체장 만남에서 통 큰 전략적 합의가 요구되고 있지만 만남 자체도 어렵고, 만난다고 해도 기존 입장을 견지해 해법 난망이다. 협상테이블에서 자로 잰 듯 협상해선 통 큰 합의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행정 난제를 행정만으로 풀려 해선 한계에 부닥치고 마는 것이다.

문제를 통 크게 풀기 위해서는 ‘다 주고 다 받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광주와 전남이 같은 뿌리란 인식이 확고하다면 군공항이 무안으로 가든 함평으로 가든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항의 기능과 역할, 도시 활성화 측면 등이 고려될 뿐이다. 전남도가 이미 짜놓은 계획대로 광주시가 군공항과 민간공항을 함께 무안으로 넘겨야 한다면 전남도는 이에 버금가는, 아니 이를 뛰어넘는 당근책을 광주시에 주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짜놓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인 ‘플랜B’도 마련해야 한다. 임기응변의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결코 땜질식 대응이 아니다.) 공항 동시 이전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면 통하기 어렵다. 광주시로서는 이용객 대부분이 광주시민인 민간공항을, 또 시민이 강력히 존치를 원하는 이 공항을 쉽게 내줄리 없다.

공항 이전 ‘다 주고 다 받는’ 전략

광주시 입장에서도 전남도가 요구하는 대로 군공항은 물론 민간공항을 동시에 이전하는 것을, 곧 그런 발표를 하겠다, 이전 지원 비용까지 추가로 부담할 수 있다며 통 큰 입장을 내보여야 한다. 그리고 전남도에 상응하는 당근책을 내놓으라고 압박해야 한다. 요는 시·도가 공항 이전으로만 문제를 제한해서 보면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광주시와 전남도가 주고받아야 할 구체적인 사항까지 밝히는 것은 주제넘고 적절치 않아 생략함을 아쉽게 여긴다. 다만 두 지자체가 과거 행정통합과 메가시티 구상을 논의하던 때의 마음, 최소한 그 연장선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란 지적을 하고 싶다. 다시 말하건대 내 것을 다 주고, 상대편의 것을 다 받는 방식을 통해야만 대타협이 나오고 공항 이전 해법이 도출될 것으로 보며, 그래야 지역 발전을 두루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