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 13회 남도문화제 출연 |
![]() 1983년 13회 남도문화제 출연 |
![]() 1987년 16회 남도문화제 출연 |
● 양반·평민·천민계층 구분없이 함께 참여
나주에도 여인들만의 특별한 놀이가 있었다. 양반, 평민, 천민 계층이 신분에 관계없이 어우러져 놀았던 이른 바 ‘삼색유산놀이’이다. 산놀이를 의미하는 유산이라는 말에 세 계층을 의미하는 삼색(三色)이라는 말이 덧붙여진 이름이다.
1925년 5월 8일 발간된 ‘조선일보’ 조간 사회면 기사에 나주삼색유산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아마 나주 삼색유산놀이에 대한 공개적인 최초 자료가 아닌가 한다.
‘부녀유산(婦女遊山)도 경찰 싸홈할 념려가 잇다고 라주(羅州)에는 삼색계(三色契)라는 것이 잇서 매년 춘절을 당하면 삼색계에서 유산(遊山)을 하는 풍속이 잇는데 지난 오일에 라주 북문외 심향사(尋香寺)에서 계원 백여명이 유쾌히 놀면서 라주시 가로 진행하는 중에 이 놀음을 구경하기 위하야 남녀 아동이 인산인해를 이루엇든 바 오후 팔시 반가량은 되야 불의에 경관대가 출동하야 모든 악긔 등을 뺏고 놀음을 중지식켯는데 그리유인 즉 밤도 깁고 또는 싸홈하기도 쉬울 뿐 아니라 또는 종일 원만히 놀앗스즉 지금부터 해산 하는 것이 조타함으로 일반 계원은 우리부인들이 무슨 싸홈 할 일도 업고 또 저녁밤도 먹지 아니하얏슨 즉 지금 우리 일행이 저녁밥 먹는 장소까지 가서 마치겟다 하얏스나 그 경관은 악긔를 빼아서 주인을 불러주면서 부인의 유산에 남자가 만히 구경하는 것은 자미가 적은 일이라고 하면서 즉시 해산을 식혓다더라(라주)’
기사를 통해 나주의 유산놀이는 이 삼색계(三色契)라는 자치 운영체계를 만들어 놀이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경관대가 악기를 빼앗아 주인에게 돌려줬다는 내용이다. 부녀자들이 악기를 직접 연주한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음악 전문 연주자들 즉 재인(才人)들이 함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삼색계 구성에 다양한 계층이 함께 했음도 알 수 있다.
![]() 1987년 16회 남도문화제 출연 |
![]() 1994년 22회 남도문화제 |
![]() 1994년 22회 남도문화제 |
![]() 1995년 삼색유산놀이 한마당 |
나주 삼색유산 계가 양반, 평민, 천민으로 구성됐고 상위계층인 양반집단이 주도하고 있었다고 전해 오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나주 성안의 양반계층은 따지고 보면 당시 양반이 아니라 예전에 양반이었거나 또는 지방 중심세력인 향리(鄕吏) 계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주목 행정구조는 목사(牧使), 판관(判官) 등 현직 벼슬에 있는 계층과 실제로 행정을 수행하던 육방관속(六房官屬) 즉 이방, 호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이라 칭했던 향리 또는 아전(衙前)들이 상호 보완적인 구조를 구성했다.
나주 삼색유산놀이 주도적인 계층은 아마 이 향리가(鄕吏家)의 부녀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읍성 안에서 권력과 재력, 정보력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연결고리를 통해 결속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씨족간 통혼(通婚)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 양반계층 운영서 평민 중심으로 자유롭게 참여
대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삼색유산을 유지하기 위해 30전씩 년 3, 4회 계돈을 걷었다고 한다. 처음 양반계층 거출비용으로 운영되던 놀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평민들을 계원으로 수용하면서 그들도 계돈을 내고 자유롭게 참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계장(契長)은 나이가 많고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행세하던 집안의 부인이 맡았는데 임기는 나이 들어 활동할 수 없을 때까지 였으며 다음 계장은 주도세력들의 추대로 선출됐다.
나주 삼색유산놀이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공론→택일→통지→추렴→음식장만→치장→이동→산신제→회식→유흥→귀가의 절차였음을 구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놀이 제반사항은 공론(公論)을 통해 결정했다. 구술에 따르면 놀이 날짜는 매년 음력 4월 10일이라고 했지만 일부 유동적이었던 것 같다. 앞의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지난 오일(양력 5월5일)’에 놀이를 했다고 했는데 그날을 음력으로 계산해보니 4월13일이었다. 그런데 그 해 음력 4월10일은 양력 5월2일로 토요일이었다. 아마 주말을 피해 3일 정도 늦춰 개최한 것으로 추정된다. 날짜가 정해지면 각 부녀자들에게 알리고 경비를 추렴해 산신제와 놀이에 쓰일 술과 음식을 장만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오전 10시 경 우선 현장에 사용될 음식을 계장의 지휘 하에 수레나 바지게를 이용해 직접 운반했다. 놀이 장소는 금성산이 바라보이는 맛재 근처였다. 금성산을 바라보고 산신제를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산신제는 삼색유산 뿐 아니라 보통 유산놀이에도 먼저 제사함으로써 제화초복(除禍招福)을 기원하던 산악숭배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산신제에 사용하던 음악은 삼현육각으로 나주목을 상징하는 기악 합주곡이었다. 삼현육각은 대나무를 소재로 만든 대금과 피리, 해금과 북, 장구가 함께 편성됐다.
산신제가 끝나면 놀이가 시작되는데 주로 양반 마님들이 빙둘러 앉고 여타 부녀자들은 음식 준비와 노래를 맞추어 불렀다. 처음부터 함께 어울리지 않았다. 오전에는 양반 마님들끼리 굿판이 주가 되고 점심 후 술기운이 올라와 흥이 나면 쟁인들의 반주와 소리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면서 모든 계층이 함께 어울렸다.
오전 10시 시작한 놀이가 석양인 오후 6~7시쯤 산을 내려오면서 마무리 된다. 하산할 때는 재인들이 앞장서서 뒷걸음치면서 참가자들을 이끌고 내려오는데 내려오다가 거리거리 넓은 곳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놀다가 다시 내려오곤 했다. 해질녘 며느리들이 각자 등불을 들고 마중 와 모시고 함께 내려오고 대부분 집에서도 자식들이 등을 들고 마중을 나왔다고 한다.
<><>● 남녀노소 장기 발휘하며 함께 즐겨
놀이를 하면서 남도민요부터 경기민요까지 가릴 것 없이 다양한 노래를 불렀는데 구술에 의하면 ‘속에 든 대로 부르고 논다’고 할 정도로 자신들이 가진 장기를 마음껏 발산하면서 다양한 민요를 불렀다. 남도지역 대표 ‘성주풀이’, ‘진도아리랑’부터 ‘모심기 노래’, ‘상사소리’ 같은 나주지역 노동요까지도 불렀다. 경기지역 노래로는 ‘풍년가’, ‘제화자’, ‘양산도’ 등을 불렀다. 그 중 당시 대표 노래는 ‘임이여’와 ‘도내기시암’이었다. ‘도내기새암’은 나주 지명과 고사(古事)를 새롭게 가사로 덧붙여 육자배기 선율로 노래했다.
‘도내기새암’은 왕건과 오씨 처녀 설화가 깃든 완사천(浣沙泉)과 김좌근 애첩 나합이 낳고 자란 영산포 도내기새암(나합샘)이 배경이다. 오씨 처녀와 나합은 나주의 여자로 자기 능력을 적극 투영시켰던 강한 여성상으로 상징되는 인물들이다. 어쩌면 완사천이 나합샘이고 나합샘이 완사천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는 노래다.
‘나주 영산 도내기샘 상추씻는 저 처녀야/상추랑을 씻거들랑 속에 속잎은 니가 먹고/쭉대길랑 나를 주면 동지섣달 긴긴 밤에/쭉대기값 내가 허리/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가사를 들어보면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을 해학적으로 노래하고 있지만 당당한 여자로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 광주·화순·영광 등지 재인들 참석해 흥 돋워
삼색유산에서 여성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재담도 늘어놓는 재인(才人)들의 역할이 컸다. 읍내에서 활동하던 재인뿐 아니라 광주나 화순, 영광 등지의 재인들도 놀이에 참석했다. 구술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대금을 잘 불었다는 나주 읍성안 김두재(두째), 아쟁을 기막히게 연주했다는 화순 김용철, 영광 피리 명인 임동선과 설장구 김오채, 남평의 소고춤 명인 안채봉 등을 기억하고 있었다.
삼색유산놀이가 중단된 시기는 1970년 중반이었다. 노동집약적 농업환경이 기계화 등 농업기술 발달로 공동체의식이 약화되던 시기와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세시풍속이 위축되거나 폐지되던 시기와 겹치게 됨을 알 수 있다. 나주 삼색유산놀이도 그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10여 년 단절이 되다가 1983년 삼색유산놀이를 이어가려는 사람들(중부여자노인학교)과 나주문화원의 노력으로 그 모습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제13회 남도문화제에 첫 선을 보인 이래 1987년 금성당제, 1988년 나주씻김굿, 1989년 나주 삼색놀이라는 주제로 3년 연속 출연했다. 1995년부터 매년 어비이날 정기 공연을 했다. 그러나 2012년을 끝으로 고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공연이 중단되고 말았다. 전승자의 확보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지난 2023년부터 나주 시립국악단에서 삼색유산놀이를 마당극으로 변환을 시도하면서 많은 칭찬과 기대를 갖게 됐다. 시대가 변한 만큼 형식의 변화는 당연한 일이다. 올해까지 두 차례 공연이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매년 봄·가을 2회 상설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올해 나주영산강축제에 주무대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고 하니 많은 관심과 참여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