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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날개
정태헌(수필가)

2020. 06.10. 10:30:05

정태헌 수필가

희붐하게 동이 터 오고 있다. 아침 산책길, 저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경광등이 요란스레 돌고 있다. 무슨 일일까. 경찰은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하고 있고 행인들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웬 하늘? 나도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회색 굴뚝 꼭대기가 아득하다.

아, 저게 누굴까?

팬티 차림으로 굴뚝 꼭대기 난간에 서 있는 한 사내. 옷은 어디다 내팽개친 것일까. 대단위 아파트 중앙난방 보일러에 설치된 대형 굴뚝이다. 높이가 거의 백여 미터는 됨직한 굴뚝 위에서 사내는 무엇을 하는 건가. 119 구조대 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온다. 그러고 보니 경찰이 전화를 한 곳이 그곳인 모양이다. 구조대는 도착하자마자 굴뚝 밑에 매트리스를 깔기 시작한다.

-저리들 가란 말야!

굴뚝 위의 사내는 위에서 꺽쇤 소리를 내지른다. 정황으로 봐 자살 소동이다. 사내는 굴뚝에 설치된 쇠사다리를 타고 오른 모양이다.

-허참, 구경해 주길 바라지 않았남.

-쳇, 진짜 죽을 놈은 저렇게 소란 떨지도 않아.

-흥, 가차 없이 뛰어내릴 일이지 저 소동이라니.

-그러게, 깊은 산 속에 들어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을 매든지, 강물에 흔적 없이 몸을 던지든지 할 일이지. 술주정이지 뭐겠어.

금세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 틈새에서 비아냥거림들이 터져 나온다.

사업이 부도라도 난 건가, 억울한 일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곤곤한 세상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이젠 목숨을 버려도 좋을 만큼 삶을 이룬 걸까. 그도 아니라면 더 는 갈 곳이 없어 굴뚝 꼭대기에 오른 것인지도 모른다.

-쉰다섯, 쉰여섯….

나는 물색없이 손가락을 꼽아 그 쇠사다리의 수를 세고 있다. 쉰여섯 개의 쇠사다리, 혹시 사내의 나이가 쉰여섯 언저리쯤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내는 그 쇠사다리 계단을 오르며 죽음을 작정했을까 또 다른 삶을 궁리했을까.

불현듯 집 베란다에 있는 나팔꽃이 떠오른다. 창문에 쳐둔 갈대발을 타고 올라 창창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운 나팔꽃. 한철, 창가에 무성한 잎을 드리우고 담자색 꽃을 피워 까맣게 여문 열매까지 맺어 밑으로 떨구고 나서야 오르기를 그만둔 것이 다행이다. 씨앗을 남겼으니 낙엽 되어 소진되는 게 무에 그리 억울하고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사내는 갑자기 하늘을 보고 두 손을 번쩍 든다. 그러더니 알 수 없는 말을 허공에 내지르다가 다시 밑을 향해 악다구니를 써댄다.

-이 나쁜 놈아. 올라오지 말란 말야!

구조대원이 굴뚝을 타고 오르기 시작하자, 사내가 아래를 향해 다시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한다. 한 발을 사다리에 걸치며 금세라도 뛰어내릴 태세다. 무슨 사단이 일어날 것만 같다. 구조요원은 오르기를 멈칫한다. 구경꾼들의 입에서 이젠 짧은 비명들이 쏟아져 나온다. 막막한 시간이 흐르며 사위가 밝아온다.

사내는 그만 지쳤는지 난간을 잡고 주저앉는다. 아래를 향해 무어라 주절대지만 분명하게 들리지 않는다. 밤새내 마신 술이라도 깬 것일까. 어쩌면 생각을 고쳐먹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마음을 바꿔 내려온다 한들 구경꾼들의 시선과 비틀린 비웃음들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불어난 구경꾼들은 허공에 떠 있는 사내를 주시하고 있다. 그예 흥미로운 구경꺼리가 되고 만다. 사다리는 오르기도 내리기도 하는 도구인데, 사내의 결심에 눈길들이 쏠려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삶을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데, 어쩌면 좋단 말인가.

사내는 언제까지 굴뚝 위에서 버틸 참인가. 밑으로 내려가자니 감내가 요청되고 몸을 던지자니 결단이 필요하며, 위로 오르자니 밧줄이 있어야 할 텐데. 하늘과 땅의 살피에서 서성대는 사내, 계단이 거기서 끝나고 만 게 그에겐 불행인가 다행일까. 사내에게 옷 대신 날개가 있으면 좀 좋으련만…. 새벽 공기가 이마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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