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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 저 불빛이
김한호(문학박사·문학평론가)

2020. 06.24. 09:00:36

김한호

새벽 안개가 부옇게 끼어 앞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안개는 파도처럼 밀려들어 차를 삼키듯이 덮쳐왔다. 이른 새벽에 짙은 안개에 휩싸인 어두컴컴한 도로에서 혼자 차를 몰고가니 초조하고 긴장되었다. 전조등을 상향등으로 켜고 속도를 줄이면서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지만 안개 때문에 사고가 날 것만 같았다.

예전에 산불이 났을 때도 짙은 연기 때문에 앞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전방 민통선 지역 야산에 원인 모를 산불이 났다. 부대 병력을 인솔하여 산불 진화에 나섰지만 숲속의 나무들이 화염에 휩싸여 벌겋게 타면서 매캐한 연기와 불발탄 터지는 소리가 전쟁터 같았다. 특수훈련을 받은 경험과 기지로 불에 타 죽지 않고 위험지역에서 병사들과 함께 빠져나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눈보라치던 그날도 그랬다. 대낮에 폭설이 쏟아지는데 앞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하얗게 덮인 논밭과 시골 도로를 구별할 수가 없어 앞에 갔던 차바퀴를 보고 운전을 했지만 그것도 눈에 덮여 잘 보이지 않았다. 대설 특보로 시내버스가 다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눈 내리는 날 차를 몰고 나왔다가 사고가 났다. 눈길에 미끄러져 언덕에서 한 바퀴 굴러 냇가에 빠졌다. 다행히 바퀴가 물에 잠겨 많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거꾸로 쳐박혔으면 익사할 뻔했다.

그날도 새벽 첫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야 하는데, 안개 때문에 속도를 낼 수가 없어 배를 놓칠 것만 같았다. 마음은 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더욱이 그날은 학교에 중요한 일이 있어 첫배를 타야만 했다. 보성 지역만 지나면 새벽 안개가 걷히리라 생각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을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여 안개 속을 헤치고 나갔다.

안개가 자주 끼는 보성은 녹차로 유명하다. 차나무는 안개가 많은 따뜻한 고장에서 잘 자라는데, 보성은 산이 많고 하천이 많아 안개가 자주 낀다. 그렇지만 그날처럼 안개가 짙고 길게 이어져 도로가 보이지 않은 적은 없었다. 차가 마치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안개 속에 저 불빛이 무엇일까? 가로등 불빛일까 아니면 자동차 불빛일까? 눈을 크게 뜨고 속도를 줄이면서 쳐다봐도 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자동차 뒤 안개등이라면 저렇게 보이지 않을 텐데….

그 순간 불빛이 차츰 밝아지면서 가까이 달려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역주행하는 차라고 판단했다. 중앙 분리대를 따라 1차선을 달리고 있었는데, 2차선으로 바꿔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차선에는 대형 트럭이 느리게 운행하고 있었다. 차는 점점 빠르게 다가왔다.

경적을 계속 울리면서 재빨리 2차선 대형 트럭 앞으로 끼어드는 순간, 대형 트럭 운전수가 놀랐는지 뱃고동 같은 경적을 크게 울려댔다. 그 순간 역주행 차는 쏜살같이 1차선에서 사라져버렸다. 참으로 순식간이었다. 만약 역주행하는 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손에 땀이 나고 온몸이 떨렸다.

아마 음주 운전한 차가 길을 잘못 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짙은 안개 때문에 내 차의 불빛을 미처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는 악마의 소행을 저지른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인생을 역주행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애먼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상처를 받고 살아간다. 이처럼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회악이 근절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예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겠다. 정년을 1년 앞두고 교직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섬학교로 갔는데, 역주행하는 차와 부딪힐 뻔한 아찔한 상황을 당하리라고 어찌 예상을 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성실히 살아가야 하는 게 인생이다.

새벽 안개가 낀 도로를 무사히 달려 동틀 무렵 부두에 도착하니, 바다안개로 아직 첫 배가 출항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안개가 걷히면서 내 차를 실은 도선이 뱃고동을 울리며 떠나자, ‘금빛 해가 뜨는 섬(金日)’에서 아침해가 눈부시게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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