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어느 선비의 초상화.

나는 지금 그 앞에 서 있다. 제목은 ‘심득경 초상’. 공재 윤두서가 1710년에 그린 것이다. 가지런한 수염과 화사한 얼굴빛, 붉은 입술, 고요한 눈동자. 머리에 쓴 관은 기품이 느껴진다. 정갈하게 차려입은 옷과 흐트러짐 없는 매무새가 반듯하고 깔끔하다. 보이지는 않지만 넓은 소매 안의 포개 잡은 두 손은 공손해 보이고, 옥색 가죽신에 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린 자세가 생동감을 준다.

화면 위쪽에는 ‘정재처사심공진(定齋處士沈公眞)’이라고 적혀 있다. 정재는 그의 호(號)일 것이고, 처사는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를 일컫는 말이니, 정재처사 심공은 아마도 이름 없는 시골 선비?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근사한 초상화를 남겼을까? 혹시 대단한 세도가였거나 만석꾼 부자였을까? 아니면 출중한 학문으로 남다른 업적을 이뤘거나 길이길이 존경할 만한 인품을 지녔거나…. 나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 채 그 앞을 서성인다.

초상을 그린 공재 윤두서는 ‘자화상’으로 유명한 화가다. 그의 자화상은 섬뜩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어서 문외한인 나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부리부리한 눈에 치켜 올라간 눈썹, 두툼한 콧날과 꽉 다문 입술, 한 올 한 올 나부끼듯 뻗쳐오른 수염…. 그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목도 상체도 없이 얼굴만 떠있는 기이한 형상이었다. 머리엔 탕건을 썼지만 그마저도 윗부분은 잘려있고, 보이는 것이라곤 뚫어져라 정면을 응시하는 커다란 얼굴뿐. 쑥대머리는 아닐지라도 흡사 귀신의 형용인 듯 흠칫한 인상이었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했거늘 어찌 그리도 발칙한 생각을 했을까 싶었지만, 사실은 미완성이라는 것이 밝혀지긴 했다, 중요 부분인 얼굴부터 먹선을 올려놓고 몸체는 아직 유탄으로 형태만 잡은 상태로 있다가 언젠가 그 부분마저 지워져 버렸다는 것. 완성되었다면 지금보다는 부드러워졌을 테지만 미완으로 남은 것이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디서 그토록 혁신적인 그림을 볼 수 있겠나….

그에 비하면 ‘심득경 초상’은 섬세하고 온화한 느낌을 준다. 담담하고 선한 표정에 뭔가를 그윽히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자신을 응시하는 것도 같고, 초연히 세상을 관조하는 것도 같다. 같은 화가의 솜씨인데 ‘자화상’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인 게 의아하기만 하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해서 그런 걸까? 여하튼 담박하고 은은한 필치가 사뭇 정겨워 나는 그의 초상을 보고 또 본다.

때마침 해설사가 온다. 그는 친절하게 그림을 설명해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요지인즉, 심득경은 공재와 친척 간이기도 했는데, 둘은 같은 해에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벼슬에는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초야에 묻혀 서로 막역하게 지내던 중 안타깝게도 심득경이 일찍 죽고 말았다. 벗을 잃은 공재의 슬픔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벗을 애도하며 이윽고 그의 초상 한 폭을 그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생생한지 보는 사람마다 감격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사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옆에 있어 실물을 보고 그린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 눈빛이며 입술이 어쩐지 살아 있는 것만 같다. 살아서 내게도 말을 거는 것 같다. 후후, 아무래도 내가 해설사의 말을 너무 새겨들었나?

전시실을 나와 뜰을 걷는다. 정원의 나무들은 이미 나신이 되어 있다.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나는 여전히 그 눈빛을 떨구지 못한다. 쓸쓸한 것도 같고 비어 있는 것도 같던 그 눈빛. 가버린 벗을 그리워하며 오직 마음으로 그렸다는 그 그림이다. 삼가 재계하고 깊은 애도의 마음을 담아 그린, 그리움이 깊어 연연히 전하는 그림이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가 안 보이는 것, 그리하여 모든 흘러가는 것들의 아픔과 슬픔을 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