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어찌케 살믄 좋겠어요?”
데스크칼럼

“나가 어찌케 살믄 좋겠어요?”

지난달 중순 핸드폰 화면을 밀어올리다 ‘콘크리트 보이스’라는 단어에 시선이 쏠렸다. 헤드셋을 쓰고 돌아다니며 보는 이동형 오디오 씨어터 공연이라는 메시지. 관객이 공연을 보러 돌아다닌다고? 의문과 함께 호기심이 생겼다. 검색해보니 지난해 한차례 공연이 진행됐고 올해도 프리뷰 행사가 열렸기에 후기를 찾아볼 수 있었다. 호기심을 해결하고 싶어 부리나케 예매 플랫폼에 가입까지 해서 들어갔는데 너무 늦었다. 2주에 걸쳐 8차례 공연이 예정돼 있었는데 모두 매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취소표가 나오면 연락해주겠노라는 친절한 답변을 받았다. 다행히 취소표가 나왔고 원하던 회차에 참가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한 시간, ‘콘크리트 보이스1:천변우로 415’가 전일빌딩245 옥상에서 시작됐다. 공연 시간이 되자 배부받은 헤드셋에서 치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가치탐험대 여러분. 저는 콘크리트의 가치 탐험을 도울 안내자 공(GONG)입니다. 헤드셋을 끼고 안내 음성에 따라 빌딩 사이를 누비는 도심 탐험이 지금 시작됩니다.”

그날 그 시간 가치탐험대의 일원이 돼 길 위에 섰다. 헤드셋에서는 마치 살아있는 듯 광주 도심의 콘크리트들의 목소리가 구수한 사투리를 휘감고 흘러나왔다. 생각도 나이도 각양각색이던 콘크리트들. 1980년 5월을 지켜보기도 했고, 그 이후 탄생했지만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는 순간을 함께한 콘크리트들도 있었다. 그들은 천변우로 415의 운명을, 그리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가치탐험대의 생각을 궁금해했다.

‘콘크리트 보이스’는 헤드셋을 쓴 채 80분 동안 동구 금남로와 충장로 일대의 5·18 사적지를 둘러보고, 건물들이 말해주는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들으며 체험하는 이동형 오디오 씨어터 공연이었다. 가치탐험대는 전일빌딩 245, 금남로 지하상가, 충장로우체국, 금남로 일대를 지나 옛 광주적십자병원까지 걸으며 콘크리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금남지하상가는 1989년 만들어져 5·18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금기를 역사로 만드는 싸움, 광주사태가 광주항쟁으로 만들어지는 투쟁과정을 지켜본 이야기를 들려줬다. 중앙미용전문학교 쪽 좁은 골목길에서는 40여 년 전 계엄군을 피해 도망쳐야 했고 투쟁했고 산화했던 당시 시민 이야기를 들었다. 콘크리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진짜 80년 그날을 맞닥뜨린 것 같은 숙연함을 느끼기도 했다.

“간판은 바뀌어도 가치는 남는다”는, 여러 변화를 겪은 우체국 콘크리트 할머니의 말도 가슴을 울렸다. 80년 5월 도청을 마지막으로 지킨 시민들이 계엄군에 잡혀가는 모습을 봤다는 무등맨션 콘크리트는 천변우로 415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곳은 광주시민이 여럿 살아난 곳이기에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전했다.

최종 목적지는 천변우로 415. 옛 광주적십자병원이었다. 5·18 당시 부상당한 시민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돌본 곳이자 피가 부족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광주시민들이 헌혈에 참여한 곳이기도 하다. 적십자병원은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지만 ‘콘크리트 보이스’ 공연에 참가한 이들에게 잠시 공개됐다.

건물 내부는 옛 적십자병원의 예전 모습이 정리되지 않은 채 멈춰있었다. 가장 최근 영화 ‘택시운전사’가 촬영되면서 사용된 소품과 서남대병원으로 문을 내릴 당시의 서류들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나가 어찌케 살믄 좋겠어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적십자병원 벽에 손을 대고 눈을 감은 채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과정은 이채로웠다. 적십자병원 활용방안으로 제시된 여행자센터, 레드크로스 레지던시 등이 새겨진 아크릴판에 헤드셋을 걸어놓으면서 가치탐험대로서의 탐험은 끝났다.

클래식하고 정통적인 방법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 세대가 다른 이들에게 역사적 사실이 전달될 때 여느 때와는 다른 방식이 더 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크리트 보이스’에서 걸었던 길은 학창 시절 자주 다녔던 공간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새롭게 느껴졌다. 현장에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듣고 체험하며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콘크리트 보이스’의 차별점. 적십자병원을 앞으로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 수렴과정이기도 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에게 남다른 방식으로 5월 광주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줬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

이번 공연은 5·18기념재단과 청년 예술 창작그룹 모이즈의 공연으로 지난해 처음 시작돼 호평을 받아 올해 다시 열렸다. 공연이 끝난 후 모이즈 관계자로부터 다음 콘텐츠로 광주역을 준비 중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광주역 역시 광주를 대표하는 장소. 모이즈의 새로운 콘텐츠가 또 어떻게 다가올지, 다음 공연을 기대해본다.
/최진화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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