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과 창작그룹 모이즈(MOIZ)가 지난 19일 505보안부대 옛터 일대에서 개최한 공연‘콘크리트 보이스2: 505보안부대’에 참여했다.
‘콘크리트 보이스’는 헤드셋을 쓰고 돌아다니며 보는 이동형 오디오 씨어터 공연이다. 5·18사적지의 활용과 보존에 관한 문제의식과 고민을 바탕으로 하는 청년 예술인 단체 모이즈가 기획했다. 지난 2022년 사적지 11호인 옛 적십자병원의 이야기를 담은 ‘콘크리트 보이스1: 천변우로 415’가 첫 공연이었다. ‘콘크리트와 물건이 들려주는 과거의 목소리’를 컨셉으로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시민의 인터뷰와 5·18 증언사료집 등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해당 공연은 2022년 초연 이후 끊임없는 재공연 요청으로 일부 공연 장면을 리뉴얼해 이듬해 재공연을 선보였다.
‘콘크리트 보이스2’ 공연은 1980년 5·18 당시 광주 시민이 505보안부대 옛터에서 경험한 기억을 재구성해 옴니버스식 드라마 형식으로 구성됐다.
‘천변우로 415’에서는 광주 도심 콘크리트들의 ‘수다’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면, 이번엔 시끄러운 콘크리트들 사이 유독 조용한 콘크리트, 505보안부대의 침묵을 깨트리는 하나의 파편이 되는 시간이 펼쳐졌다.
공연은 현재 5·18역사공원으로 관리되는 505보안부대 앞 잔디밭에서 시작됐다. 콘크리트의 가치 탐험을 도울 안내자 공(GONG)의 안내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본관 제일 꼭대기에 위치해 오랜 시간 건물 앞을 내려다본 깃대봉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부대 내 면회실, 본관, 식당, 이발소, 지하실 등으로 발걸음을 옮겨 1980년 6월 초의 시간으로 이동했다.
면회실에서는 바늘, 식당과 이발소에서는 라이터, 그리고 본관에서는 펜과 십자가 목걸이를 관람객이 직접 찾았다. 안내자 공은 이 물건들이 원래 쓰였던 자리로 돌아가면 보안부대의 침묵이 깨질 수도 있다고 했다.
505보안부대는 1980년 5·18 당시 전남지역 합동수사본부로 사용된 곳이다. 당시 잡혀온 민주인사들을 구금하고 고문했던 이른바 ‘지하감옥’으로 불렸던 장소. 또한 5·18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작전본부의 기능을 수행했으며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조작 장소이기도 하다.
십자가 목걸이가 놓여있던 본관에서의 이야기는 헤드셋을 쓴 모두가 어떠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숨을 죽였다. 당시 사체검안위원회를 재구성했는데 총알이 관통하면서 남긴 두 개의 구멍 크기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가 됐다. 구멍 크기의 차이가 크면 M16 총탄을 맞은 경우(난동자), 크기가 차이가 나지 않으면 카빈을 맞은 경우(양민)로 구분했고 양민으로 분류가 돼야 1인당 400만원의 위로금이 주어졌다. 당시 카빈 사망자인지, M16 사망자인지 뻔히 알면서도 장례를 치르기 위한 돈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양민을 선택해야 했다는 이야기에 주변은 숙연해졌다. 플로피 디스크로 만든 당시의 보안 서류들, 사람들이 모이는 걸 막기 위해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 장소 변경을 지시하는 서류 등에도 눈길이 갔다.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들어간 지하실에서는 더욱 마음이 복잡해졌다. 민주인사들을 고문했던 그곳, 비명소리와 피비린내가 났던 그곳, 모든 것을 보고 들었던 505보안부대 콘크리트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게 당연해 보였다.
80년 6월 초 시간의 터널에서 벗어나 다시 보안부대 본관 잔디밭 앞에서 탁 트인 세상을 바라봤다. 505보안부대는 2007년 5·18사적지 26호로 지정됐으며 2008년 5·18역사공원으로 조성되면서 이제 인근 주민들이 평온하게 산책을 즐기는 곳이 됐다. 어쩌면 이곳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콘크리트 보이스의 마지막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 평온한 세계 아름답지 않은가. 저곳이 자네들이 만난 물건들이 원래 있어야 했던 곳이겠지. 하지만 이곳에서 그 물건들이 누군가에게 해로운 기억이 되었던 건 그 물건이 이곳에 놓였기 때문일까. 왜 어떤 물건은 유독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을 때 힘이 세질까. 그 누군가는 그 물건이 이렇게 쓰일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침묵은 어쩌면 더 많은 말일지도 모르지. 나는 이만 말을 멈추겠네. 내가 마지막으로 만든 명령은 침묵이니까.”
이날 가치탐험대의 발걸음이 505보안부대의 침묵을 깨트렸을까.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에게 남다른 방식으로 5월 광주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 가치탐험대로서의 소중한 경험, 5·18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