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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피로와 경제적 어려움, 국내 문학의 위기상황 속 들려온 엄청난 낭보라 기쁨과 놀라움은 더 컸다. 한글만이 전달할 수 있는 언어의 뉘앙스를 번역하기 쉽지 않은 탓에 노벨문학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깨고 언어 장벽을 넘어 세계문학의 중심에 섰다는 것이 국가와 K-문학의 자긍심을 한껏 드높인다.
사실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을 들은 날 밤, 필자는 머리가 띵해졌다. 지금까지도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얼마 전 서재로 쓰던 방에 침대를 들이기 위해 책상과 책꽂이를 비웠는데 헌책방에서 수거해 간 그 많은 양의 책들 속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를 함께 보낸 것이다. 혹시 몰라 집에 남아있는 책들을 뒤져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부끄러운 어리석음에 몸둘 바를 몰랐다. ‘가치’를 생각없이 다룬 이 한심스러움에…. 이런 죄책감을 더욱 무겁게 질책하듯 한강 작가의 책은 국내외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노벨상 감동 ‘한강 열풍’으로
작가의 수상 소식 이후로 그의 작품 뿐만 아니라 독서에 대한 관심도 환기되는 분위기다. 책에서 얻는 지식과 표현법, 언어의 매력, 문학으로 소통하는 법 등 문학작품에 대한 긍정적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한강 작가의 인터뷰, 그가 들었던 음악까지 회자되며 차트를 역주행하고, 그의 문학적 사유와 대화법, 문학 감상 등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광주시는 1인 1책 바우처 행사 등 독서 프로그램을 추진키로 했다. 시도 교육청은 책 읽는 문화 조성에 나서기로 했다. 한강 작가도 “광주라는 도시가 시민이 책을 많이 읽는 도시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다.
문학이 세상을 바꾼다고 했다. 한국문학의 발전과 세상의 변화를 함께 실감한다. 종이책을 읽는 사람이 현저히 줄면서 그동안 서점과 출판사는 위기였다. 최근 몇 년 간 우리나라의 성인 독서율은 하향 곡선을 그려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2022년 9월∼2023년 8월) 성인 가운데 일반 도서를 단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종합독서율은 43.0%로 1994년 독서 실태조사(격년)를 실시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문학에 대한 관심과 독서 열기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변화시킨 듯 하다. 이 열기가 꾸준히 이어졌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우리말 언어 표현은 물론 독서를 통한 인문학적 시각으로 삶이 조금이라도 더 풍요로워졌으면 좋겠다. 문학은 우리 삶과 사회에 대한 이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직면한 문제들에 해답을 찾아내도록 도울 수 있다. 문학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세계와의 연결고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 가을 독서열기 이어지길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작별하지 않는다’ 중)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소년이 온다’ 중)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채식주의자’ 중)
이 가을 문학의 세계에 빠져보길. 많은 사람들이 ‘숏츠’ 대신 독서의 즐거움을 누려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