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간재 편집국장 |
‘마른 하늘에 날벼락’.
지난 12월3일 내려진 비상계엄을 비유하면 이 말이 아닐까. 전국민은 지난 1980년 5월 ‘서울의 봄’을 2024년 다시 볼 줄은 미처 몰랐다. 처음엔 가짜뉴스 아닐까 했다. 그만큼 국민의식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시간이 지나자 비상계엄 발령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계엄 포고령에 나오는 용어도 한참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들이었다.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 ‘자유 대한민국 수호’ ‘종북 반국가세력 일거에 척결’…. 어디서 긁어 모았는지, 일일이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마치 전두환 정권 시절 ‘배달의 기수’를 보는 듯 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 알았던 단어도 보인다. ‘처단’하겠단다. 전두환 정권 당시 보안사에서 쓰던 문서를 베낀건 아닌가 싶다. 자고로 대통령이란 여야, 찬반론자를 끌어안고 화합해야 하는 자리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갈라치기, 반대파 죽이기 등으로 국가를 분열시키고 말았다. 위정자들은 위기에 몰리면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고 실수를 남발하게 된다. 이번에도 준비부족 속에서 밀어 붙이다 보니 사단이 난건 아닐까.
시민들, 자발적 도청·국회의사당으로
비상계엄 선포에도 국민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국회로 모여들었다. 총칼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차량을 동원해 경찰버스 이동을 방해하고 맨몸으로 계엄군의 장갑차를 돌려 세웠다. 계엄군 총에도 물러서지 않고 계엄 철폐를 외쳤다. 전국 각지에서 계엄 철폐와 윤석열 체포를 외치는 시위가 일어났고 온라인상에서도 윤석열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국회에서도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이 계엄군 진입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가 대한민국을 45년 전으로 되돌려놨지만 국민들은 끝내 과거로 후퇴를 막아낸 셈이다.
비상계엄 실패는 국민의 민주 수호 의지 덕분임은 물론이다.
여당은 내년 6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재판결과에 한가닥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뉴스도 나온다. 유죄가 확정되고 출마자격이 박탈된다면 손쉽게 대권을 거머쥘 것으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큰 오산이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는 법이다.
이번 사태 마무리를 위한다며 한동훈 대표·한덕수 총리가 ‘질서있는 퇴진’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물러 나면서 자연스럽게 한 대표에게 바통을 넘겨주며 2차 친위쿠데타를 하겠다는 뜻 아닐까. ‘어불성설’이다. 나라를 혼란으로 빠뜨린 자들이 국가의 안위보다 당의 존폐만 걱정하는 모습이다. 이번 사태는 1987년 전두환 노태우가 연출했던 6·29선언의 제2탄이라는 걸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지난 1980년 5·18학살 이후 5월31일 꾸려진 ‘국가보위특별위원회’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자신들이 얼마나 잘못을 저질렀는 지 모르고 있는게 틀림없다. 자격없는 그들이 수습하겠다는 발표에 국민 반발만 키우는 모양새다.
시간이 없다. 내란혐의로 조사가 시급하다. 경찰 국수본이 나서야 한다. 국수본은 검찰과 달리 내란죄에 대한 직접 수사 권한을 가진 기관이기 때문이다.
내란혐의 조사, 경찰 국수본이 나서야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도 비상계엄에 대한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시민들의 목소리 중 여당 행태를 비판하는 글이 눈에 띈다. “본인의 실력과 노력에 비해 얻은 과도한 이익(지지와 권력)은 언젠가 비싼 영수증으로 날아온다는 역사적, 정치적 교훈을 간과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영국 가디언지는 “K팝과 독재자들, 계엄이 한국 두얼굴 드러냈다”, 미국 포브스는 “계엄령 시도 댓가, 한국 5100만 국민 할부로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지적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자유론’을 쓴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도 이번 사태를 지켜봤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같다. “그거봐,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게 아니잖아.”
비상계엄 사태 속 혼돈의 정국이지만 한줄기 기대와 희망이 보인다. 1948년 이승만의 계엄령을 시작으로 박정희 비상계엄, 80년 5월 전두환의 비상계엄도 87년 민주화를 거치며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박근혜를 탄핵해 정권을 바꿔버린 국민의 위대한 힘을 봤다. 이번 윤석열의 비상계엄도 현명한 국민들의 판단으로 다시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양우석 감독의 영화 ‘변호인’에서 국가폭력에 희생당할 위기에 처한 청년을 구하기 위해 법정에서 그를 변호한 송우석(송강호) 변호사의 일갈을 헌법을 유린하고 혹세무민에 앞장서는 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이다.” 박간재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