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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친목회의 멤버인 어느 중소기업 대표도 저 직립의 자세로 아픔 많은 계절을 건너왔다. 그는 유달리 부부 사이가 좋았다. (주)000 대표인 그는 아내와 함께 매번 모임에 참석하길래, 별 어려움 없이 사업을 이어 온 줄 알았다. 그런 그에게 좌절의 슬하에서 울음소리를 먹고 자란다는 아픔이 있는 줄은 몰랐다. 친척의 부탁으로 보증을 선 게 잘못되어, 하루아침에 그의 회사는 어려워지고 살던 집까지 압류당해야 했다. 몸집 키운 절망의 부족이 그를 집어삼켰다. 그 부족은 날마다 슬픔을 번식시키며 그 영토를 확장해갔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슬픔의 족적들이 자정까지 찍혀 있어, 그는 죽고 싶었다. 그를 믿어 준 아내의 사랑 때문이었을까, 그는 다시 일어서기로 마음먹고 의료기 사업을 시작했다. 절망에 굽히지 않는 직립의 자세로 사업하며 재기를 꿈꿨다.
황태덕장으로 눈보라와 함께 한기가 몰아치고 있다. 도망가지 않고 살얼음을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고유의 맛이 난다는 뜻일까. 살 속으로 파고드는 아픈 수식어를 녹여내야만 깊은 맛을 낼 수 있다는 뜻일까. 덕장에서 눈보라의 말을 한 자 한 자 읽기 위해 모두 입을 벌리고 있다. 그도 눈보라 같은 영업을 혼자서 뛰며 생의 중심을 잡아갔다. 수도 없이 병원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다시 찾아가 끈질기게 설득했다. 어긋매끼게 엮은 덕장처럼 곁을 지켜준 아내가 있어, 그의 직립의 자세는 불안하지 않았다. 그렇게 4년 만에 재기에 성공한 어느 날, 음식물 쓰레기의 심각성을 깨닫고 음식물 처리기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자금난과 수없는 실패를 디디고 5년 만에 제품을 완성해 일본으로 수출까지 했다.
황태덕장 위로 내려앉은 겨울 햇살이 정오의 나른함 이고 끄덕끄덕 졸음을 쏟아내고 있다. 거무튀튀하게 졸고 있는 명태의 몸 여기저기가 황금빛을 띠고 있다. 핏속에 흐르는 바다와 파도의 목소리를 지우고 산과 눈보라의 피를 수혈하기 위해, 주저없이 덕장에 매달린 시간이 황금빛을 만들어낸 것이다. 작년에, 그는 황금빛 상을 받았다. 그의 회사가 직접 제작한 공기청정기로 의료발전 대상을 수상했다. 종종 모임에서 아내를 바라보며 머금은 그의 미소가 왜 그리도 따스하고 빛나는 황금빛이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다시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다. 산에서 불어오는 저 눈보라의 말을 몽땅 읽어내면, 언젠가는 뜨거워진 가슴으로 황금빛 바람 한 자락을 명태알처럼 낳을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