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덕은 |
노랑이의 죽음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지만, 어떤 슬픔이 몰려들면 노랑이의 울음소리는 다시 저녁의 담장을 넘어왔다. 그 울음소리는 밤새 안 자도 졸리지도 않는지 슬픔 가둔 밤을 물어뜯었다. 아무리 울어도 보고픔에는 굳은살이 박히지 않았다. 노랑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물집이 잡혔다 터지면서 마음의 살갗이 벗겨졌다.
노랑이의 울음소리를 지울 수 없어 결혼 후에도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다. 애들이 아무리 졸라대도 들은 척도 안 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된 딸과 아들의 간절한 바람 앞에서 무너졌다. 눈동자 외에는 온몸이 하얀 강아지, 스피츠를 키웠다. 이름이 ‘아이리’였다. 내 방으로 못 들어오게 하려고 ‘쓰읍’ 소리를 내면, 아이리는 앞발 하나를 든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그게 어찌나 귀엽던지, 내 방의 출입을 허용했다. 사랑스런 지상의 표정은 모두 아이리의 네 발이 옮겨 적었다. 아이리는 상처로 얼룩져 왜곡된 한낮의 얼굴을 물리쳐 주었다. 저녁의 상냥한 말투와 감정까지 아이리의 왼뺨에서 오른뺨으로 건너갔다.
하루는 동물병원에서 예방접종을 했다. 그날 밤 목욕시키지 말라는 말을 깜박 잊고 아이리를 씻겼다. 걱정스러워 밤새 자주 일어나 살폈는데 새벽 5시경에 아이리의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아이리의 네 발은 슬픔이 자라는 쪽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차를 몰고 동물병원에 갔지만 새벽이라 문이 잠겨져 있었다. 수의사가 올 때까지 차 안에서 기다렸다. 옆좌석에서 죽은 듯이 누워 있던 아이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어댔다. 꼬리는 즐거운 상상으로 아침에서 저녁까지 삼백육십 도로 흔들 수 있다는 듯 살랑거렸다. 저 꼬리에는 어떤 기분 좋은 힘이 있어 말랑거리는 일상과 행복의 첫자리를 다시 끌고 왔다. 아이리가 살아났구나 싶어, 아이들에게 그 소식을 알리려고 핸드폰을 들었다. 그 사이에 아이리는 그만 털썩 주저앉더니 숨을 거두었다. 죽음을 앞둔 아이리의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세월이 흘러 노랑이와 아이리로 인한 슬픔이 옅어져 가던 어느 날이었다. 저녁의 경계를 넘어오더니 적막이라는 앞발을 내밀며 꼬리를 흔드는 외로움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외로움이라는 애완동물은 밥 먹을 때도 화장실 갈 때도 졸졸졸 나만 따라다녔다. 그때부터 그 애완동물을 키웠다. 먹을 것을 주지 않아도 내 감정의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잘도 자랐다. 밤이 되면 외로움의 네 발은 쓸쓸함이 다가오는 쪽으로 향해 놓고 내 곁에서 잤다. 나는 불을 켜지 않고 그 애완동물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창밖을 보니 달이 떠있었다. 오랫동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는 듯 달의 눈길이 따스했다. 내가 달의 애완동물이었을까. 달이 환하게 웃었다. 나는 어느새 달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