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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우리집 큰방에는 동네 아줌마들로 북적거렸다. 할머니는 갓 시집온 새댁들에게 담배 피는 것을 가르쳤다. 당시 동네에서는 여러 집에서 담배 농사를 짓고 있었다. 잘 말린 담배잎을 빻아 종이에 말아 불을 붙이면 곧바로 담배가 되었다. 처마 밑은 담뱃잎이 자신의 혈통을 잇기 위해 그늘에 바짝 몸을 말리는 곳이었다. 담배는 대(代)가 끊기지 않는 대물림을 위해 그늘과 새댁들을 계속 포섭했다. 할머니는 생의 안쪽에서 자라는 지루함과 무료함이라는 유전자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뻐금뻐금 피는 자세를 새댁들에게 이식시켰다. 그렇게 손(孫)이 귀한 뻐금뻐금의 후손들은 자욱한 담배 연기로 유전도(流轉圖)를 그리며 순수 혈통의 담배마을을 낳았다.
특히 겨울이면 눈보라가 휘몰아치건 말건 우리집은 늘 떠들썩했다. 작은방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심심해지면 나는 큰방으로 갔다. 할머니가 건네준 군고구마를 시원한 동치미 국물과 함께 먹었다. 배가 부르면 방바닥에서 뒹굴거리며 놀았다. 그마저도 심심하면 자욱하게 떠다니는 담배 연기를 한 주먹씩 낚아채 입에 털어넣은 후 다시 뱉어냈다. 입술에서 동백꽃이 피어났다. 입 모양만으로도 뻐끔뻐끔 꽃 한 송이씩 피어났다. 동백꽃의 예법대로 꽃잎과 꽃잎이 맞물리며 허공에서 연기를 뿜어냈다. 나는 어른이 된 것처럼 심심하지 않았다. 지루한 겨울과 따분한 일상에서의 일탈 같은 동백꽃의 생각으로 내 몸은 차츰 붉어졌다.
찬바람 때문에 문을 닫은 방은 하루종일 담배 연기로 가득찼다. 문짝을 제외하고는 모든 벽에 고구마를 쌓아놨는데 고구마의 틈새까지 담배 연기가 빼곡히 메꾸고 있었다. 방안을 떠도는 뻐끔뻐끔 종자들은 추위를 이용해 자신의 세를 과시하느라 아우성이었다. 뿌옇게 부어오른 연기의 발목들이 아랫목과 윗목을 차지하더니 급기야 서로의 발목을 짓밟고 올라탔다. 그중 몇몇은 빽빽한 틈에서 뭉개지고 깔리었다. 할머니는 허공에 쌓아놓은 연기의 지층이 허물어지지 않게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잘 조성된 동백숲의 동백꽃은 붉디붉었다. 지루한 겨울에서 벗어나려는 꽃의 몸부림이 환했다. 할머니가 담배 피는 것을 가르칠 겸 새댁들을 불러들이듯 동백꽃은 동백나무 가득 붉음을 불러들였다. 뻐끔뻐끔 꽃잎을 여는 동백꽃들로 동백나무 가지 사이의 허공은 희뿌옇다.
어느 날, 할머니는 이승의 삶이 심심했는지 갑자기 돌아가셨다. 상여가 동네 당산나무 앞을 지나갔을 때였다. 하늘에서 무지개가 떴다. 혼자 가는 저승길이 심심했을까, 할머니는 무지개를 타고 저세상으로 떠났다. 뎅뎅 울려 퍼지는 요령 소리가 동백꽃처럼 하늘 가득 꽃피고 있었다. 그 뒤를 물안개가 담배 연기처럼 스멀스멀 뒤따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