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당과 집주변에 빼곡하게 차일을 치고 닷새씩이나 밤낮 없이 이어졌던 조부모님의 회갑 잔치는 어린 날의 풍경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좋은 기억 때문이었을까. 부모님의 회갑과 칠순은 물론, 남동생의 결혼식까지 친정집 뜰에서 치렀다. 100여 개가 넘는 청사초롱을 손수 만들어 걸어놓고, 오묘한 불빛이 너울너울 어우러지면 그야말로 잔치의 절정에 빠져들었다.
살림을 꾸려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좋은 사람들과 마당에 모여 음식과 정을 나누는 꿈을 꾸었다. 결국 근교에 마당이 있는 오두막을 장만하면서부터 우리의 잔치는 거의 주말마다 벌어졌다. 물론 내 허리에는 어머니처럼 행주치마를 두르는 순간이 많았고, 그 시간만큼 부모, 형제를 비롯한 많은 지인들과 훈훈한 정을 나눌 수 있었다.
모임 음식으로는 손수 담근 차와 술, 그리고 숯불에 노릇노릇 구운 돼지고기면 족했다. 때로는 텃밭의 고구마와 감자, 옥수수, 콩 등을 쑥쑥 뽑고 따서 모닥불에 던져 놓기도 하고, 딱딱한 인절미 몇 조각을 석쇠 위에 척 올리면 최고의 잔치 음식이 되었다. 일명, 모닥불 잔치라고나 할까. 밤이 이슥해지면 마당 한가운데서 활활 타오르는 불 앞에 둘러앉기만 해도 더할 수 없이 훈훈한 잔치 풍경이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잔치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스스럼없는 정(情)이 넘쳐흘렀다. 인륜지대사, 즉 ‘일생 의례’의 굽이굽이마다 금품의 부조보다는 마음 가득 정을 담아 잔치마당에 축복의 물결이 넘실거리게 했다. 그 결집력은 경사는 물론이고 상례의 슬픔까지도 승화된 축제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런 이유인지 소설가 이청준은 상례의 절차를 심도 있게 다룬 소설 표제를 ‘축제’로 발표하기도 했다.
세월과 함께 우리 부부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우울한 일이지만 건강상 도시와 시골을 넘나드는 생활에 한계가 왔다. 고심 끝에 산밑 도심 주택으로 옮기는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주 한가롭고 편안할 줄만 알았다. 한데 알 수 없이 더해가는 공허감은 나를 허둥거리게 했다. 다행인 것은 그동안 시골 생활에 열정을 바쳤던 남편이 의외로 주어진 조건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었다. 날마다 아주 색다르고 새로운 잔치에 빠져 혼자서 부산하다. 뜰 안 곳곳에 먹이를 놓아 온갖 새들에게 융숭한 대접을 하고 있다. 찬밥은 물론, 하찮은 과일 껍질들까지 새들이 먹기 좋은 곳에 수시로 놓아주고 물앵두, 멀구슬, 피자두, 오디 같은 열매들은 아예 나무에서 따지도 않는다.
세상에 헛된 일이 어디 있을까. 요즈음 차림새도 다양한 잔치 손님들이 정원수에 주렁주렁 열려 노랫소리가 마당에서 끊이질 않는다. 새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다고 해서 ‘새’라는 설이 있다. 인간 세상과 천상의 세계인 하늘을 연결해 준다는 뜻이다. 어쩌면 새로운 잔치 손님들 덕분에 우리 집에는 자연 솟대도 세워지고, 언젠가는 떠나야 할 우리 부부의 천상길도 밝을 것 같은 예감이다.
어느새 나까지도 전염이 되었는지 가장 마음에 드는 행주치마를 골라 허리에 두르고 부랴부랴 뜰로 나선다. 오늘도 나름 신나는 잔치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