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덕은 |
굶주린 바람의 아가리, 그 폭퐁 속에서 날아오른 알바트로스처럼, 그도 아찔한 생의 벼랑 끝에서 날개를 활짝 펴 날아올랐다.
신발 뒷굽이 닳아져 수선집을 찾던 중, 우연히 그가 운영하는 구둣방에 들어갔다. 한 평쯤 되는 공간에서 그는 신발을 수선하며 자신의 과거를 꺼내놓았다.
“왕년에는 꽤나 큰 양화점을 경영했지요. 직접 구두를 제작하기 때문에, 또 솜씨가 괜찮아서,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았어요. 양화점이 점점 세를 늘려갈 무렵, 다른 사업에 손을 댔는데, 그게 실패하는 바람에 그만….”
걷잡을 수 없이 불어닥치는 생의 폭풍 앞에서 그는 좌절했다. 그의 자존심까지 게걸스럽게 물어뜯는 삶의 폭풍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 폭풍은 무례한 맨손으로 그의 낮과 밤을 집어먹다 내동댕이쳐 그는 한없이 추락했다.
구둣방 한켠에 기부 관련 상장들이 있어 궁금증이 일었다.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가장이기에 일어서야 했지요. 이리 저리 헤매다가, 이렇게 조그맣게나마 구두 수선집을 차렸지요. 내가 이렇게 힘들었는데, 나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은 얼마나 더 힘들까, 그 생각을 하면서 기부를 시작했어요. 아내도 흔쾌히 허락해 주었지요. 구두 수선비 받을 때마다 조금씩 저금통에 모아가고 있어요.”
생의 벼랑 끝에서 날아오른 그의 기부 날개가 감동스러웠다. 그에게서 바람의 심장을 뚫고 날아오른 깃털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의 날개 어디에 위태로운 허공을 받치고 떠오르는 힘이 있었을까. 날지 않아 퇴화된 나의 날개뼈가 욱신거렸다. 퇴화된 돌기 위로 상흔과 불안과 욕심이 덕지덕지 껴있는 것 같았다.
알바트로스 아기새가 절벽 위에서 떨어지며 바다로 곤두박질친다. 허공 위로 몸을 쌓듯 팔랑팔랑 떨어진가 싶더니 어미새를 따라 날개를 활짝 펴 날아오른다. 추락과 공포가 도사린 허공을 헤매다 바람을 끌어안는 힘으로, 혁명과도 같은 날개의 신념으로 당차게 날아오른다. 그도 기부라는 날개로 날아오르며 18년 동안 기부했다. 그 공로를 높이 사 KT그룹 희망나눔재단의 희망나눔인상을 받았다.
맞춤 구두를 찾으러 구둣방에 다시 갔다. 무지외반증이 있어 그 어떤 구두도 불편했는데, 그가 제작한 구두는 엄청 편했다. 세상에나, 이렇게 편한 구두가 있었다니. 그는 구두로 나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고공 행진을 해야 하는 세상에서 바닥으로 추락하지 말라는 구두라는 날개. 저 구두에는 몸살 앓으며 날갯짓했던 그의 낮과 밤이 들어 있었다. 가만가만 귀기울이면 구두에서 푸드덕 날개깃 펼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구둣방으로 손님이 들어왔다. 세상의 어둠이 야금야금 갉아먹은 구두라는 날개를 그가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