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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도 이집트여서 가능했을 것이다. 버킷리스트는 아니지만 이번에 못 가면 내 생전에는 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마음의 압력이 가는 쪽으로 몰아주었다. 7박 9일, 그리고 인천에서 두바이까지 10시간, 두바이에서 카이로까지 4시간 도합 14시간의 비행 여정은 분명 내게는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아랍 에미레이트 항공은 지금까지의 어떤 여행 때보다 쾌적하고 너른 실내에 친절함까지 더해주었다. 카이로에 내린 우리의 첫 일정은 투탕카멘의 미라가 소장된 카이로 국립 고고학박물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왕이 되어버린 투탕카멘은 고대 이집트 제18 왕조 12대 왕으로 기원전 1332년경 9-10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10년간 통치하다가 18-19세로 사망한 소년 왕이다.
그런데도 그가 이리 유명한 것은 19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거의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그의 무덤(KV- 6)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선 5천 점 넘는 보물에 특히 황금관이 발굴되어 그게 더 유명해졌다. 나는 첫날 그의 황금관과 만나면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을 준비한다면서 삶의 대부분을 바친 것 같지만 그들이 남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화려한 장식품, 정교한 미라 제작, 벽화 속에 그려진 일상, 사랑하는 이와의 모습, 신을 향한 경외심,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완전한 영원을 바랬던 것 같다.
계속 이어지는 여행에서 거대한 신전 특히 우람한 신전 기둥들의 숲과 아부심벨 신전의 어마어마한 라메세스 2세 상, 왕가의 계곡 무덤들, 룩소르 신전과 석상들, 마지막 날 본 기자의 대 스핑크스, 그 앞에서 한없이 왜소한 나로 대 피라미드 역시 이 일들을 이룩해 낸 신이 아닌 인간의 능력 곧 그들 삶의 흔적 앞에 신선한 충격과 감격으로 전율했다.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데 삶의 대부분을 바쳤다는 아이러니, 그것은 신을 숭배함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유한함을 뛰어넘어 신에 이르고 싶었고, 시간의 한계도 정복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런 거대함과 대단함이 오히려 오늘 우리에게는 인간의 유한함을 가장 생생하고 분명하게 일깨워 주고 있다.
투탕카멘은 소년 왕이란 이름처럼 18세로 어려서 죽어 자손도 없고 이렇다 할 업적도 남기지 못한 탓에 다른 파라오에 비해 존재감이 있을 수 없는 왕이었다. 하지만 가장 완벽하게 발견된 무덤으로 인해 어느 파라오보다 더 유명하게 되었으며 특히 그의 미라가 보관된 박물관까지 화제가 된 것 같다. 21년이라는 오랜 기간의 공사를 거쳐 완공된 세계에서 가장 큰 이 고고학 박물관은 입구부터 피라미드 모양으로 웅장함을 자랑하는데 내부로 들어가니 거대한 파라오 조각상과 관련 유물과 동상들이 두려움을 자아낼 만큼 위용을 자랑하며 우릴 맞이했다. 이 박물관은 루브르박물관의 두 배 크기로 이집트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역사적 자료를 보유한 나라의 위상에 맞게 만들어버렸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와 미라를 보면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어떤 믿음으로 다음 세계를 믿고 기대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들에게 삶과 죽음은 다른 세계가 아니라 현세의 삶에서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죽음이라 보았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3,400년 전 사람과 만나는 감격 그리고 세 개의 관이 중첩 구조로 제작된 황금의 관, 그 가장 안쪽 관은 110kg의 순금 관에 유리, 터키옥, 홍보석으로 삼강 처리되었단다.
나는 그것들 앞에서 첫날부터 한없이 작아져 버린 채 계속해서 이집트 속으로 들어가며 람세스 2세의 조각상, 아스완 하이댐과 미완성 오벨리스크, 콤옴보 신전의 악어 미라와 에드푸 신전의 호루스 상, 왕가의 계곡에서 본 파라오들의 무덤들을 만났다. 멤논의 거상과 핫셉수트 여왕의 장제전, 모하메드 알리 모스크의 첨탑, 올드 카이로의 공중교회와 칼 힐리리 재래시장 등에서는 내 삶 속에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인간의 위대함을 상기시켰다.
특히 마지막 날 마주한 146m의 거대한 삼각형 피라미드는 돌 하나 무게만도 2.5톤이라는데 4500년 전에 그 무거운 석재를 운반하고 다듬던 석공들의 손과 솜씨는 신에 가까운 특별한 존재가 아녔을까 싶었다. 5천 년 역사의 우리나라지만 이집트의 그 대단함엔 말을 잃었다. 그 모든 여정은 영원으로 향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그들 역사 흔적 앞에서 우리 또한 어떤 것을 얼마큼 남길 수 있을까 새로운 두려움이 설렘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