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단풍
에세이

봄 단풍

탁현수 수필가·문학박사

산밑 동네에 살다 보니 눈 쌓인 겨울밤이면 뒷산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소리에 잠 못 이룰 때가 있다. 이웃 사람들에 의하면 폭설을 이기지 못한 나무들의 사지가 찢기는 외마디소리라고 한다. 어느날 등산길에서 그 울음 터의 주인공이 소나무를 비롯한 상록수들이라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상록수들을 볼 때마다 마냥 연민의 마음만을 보낼 수가 없었다. 내려놓을 때 놓지 못하고 동장군이 찾아들 때까지도 욕심스럽게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 우매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봄날, 마당 울타리 옆을 지키던 소나무를 살피다가 소리 소문도 없이 떨궈놓은 봄 단풍을 만났다. 관심 있게 주변을 둘러봤더니 새로 피운 이파리들 사이 사이로 삶의 허물을 하나씩 둘씩 털어내는 또 다른 나무들도 보였다. 온 산천이 봄꽃 잔치로 들썩이건만, 호랑가시나무, 향나무, 동백 등의 상록수들은 미동도 없이 묵묵한 모습으로 그렇게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초롱한 표정으로 꽃망울을 터트리고 새잎을 피워내는 낙엽활엽수들은 봄 단풍과는 무관하다. 지난 가을 이미 훌훌 벗어버린 날렵한 몸으로 봄햇살과 눈 맞추며 희망의 팡파르를 찬란하게 울리고 있질 않은가. 그 속에 끼어 앉아 철 지난 옷을 겹겹이 두른 둔탁한 모습으로 봄을 맞는 상록수들의 사연쯤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리 그렇지만 앞다투어 새 생명이 소생하는 봄의 한가운데에서 단풍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울긋불긋 요란도 하게 만산을 물들이는 가을 단풍에 환호하느라 봄 단풍이라는 것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하기야 세상천지에 쇠락의 과정을 겪지 않는 삶이 어디 있을까. 다만 인내와 고뇌로 응어리져 뭉쳐졌을 세월의 허물을 그렇게 흔연하고도 호들갑스럽지 않게 벗어낼 수 있는 의연함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폭설에 찢기고 부러져서 피 울음을 흘리며 겨울나무로 살아가는 모습을 가슴 졸이며 지켜본 지난날이 있다. 나이 서른에 남편과 사별하고 걸음마도 제대로 못 하는 아들 둘과 함께 겨울 벌판에 던져진 그녀. 휘청휘청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도 두 아이의 이파리 하나라도 다칠세라 정성껏 끌어안고 엄동설한을 나던 모습이란…. 의연한 척, 괜찮은 척 설움의 눈물을 차마 한 잎도 털어내지 못하고 견뎌내고 또 견뎌낸 세월이었다.

얼마 전 그녀의 둘째 아들 결혼식장에서 어느새 식구 수가 배나 늘어 있는 그 가족을 만났다. 드디어 옹골차게 다져진 옹이 위에 파란 새순이 움트고 있는 것을 모두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이제는 그 아픈 세월을 봄 단풍으로나마 조금씩 지워가며 새싹을 푸르게 푸르게 키워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꽃이, 또는 새잎이 더욱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은 한결같이 산과 숲의 배경과 정서가 되어주는 상록수들 덕분임을 잊고 살았다. 또한 사시사철 푸르름을 일관하기 위해 인내와 역경의 시간마저도 남모르게 봄 단풍으로 덜어내며 감내한다는 것도 그동안 깨닫지 못했다. 추사 김정희 역시 ‘세한도’ 발문에서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무에만 한하는 일이겠는가. 사람 사는 세상에서도 상황과 시류에만 연연하지 않고 의롭게 제 모습을 지켜내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인지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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