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이 전하는 말
에세이

거울이 전하는 말

김한호 문학박사·수필가·문학평론가

청동기시대의 청동거울은 수천 년 동안 고분에 파묻혀 있다가 파랗게 녹이 낀 채 발굴되었다.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거울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꿈꾸던 세상을 거울 뒷면에 새겨 넣었다. 나는 청동거울을 보면서 거울이 전하는 말을 볼 수 있었다.

지난 달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빛, 고대 거울의 속삭임’이라는 청동거울 기획특별전을 보고 왔다. 청동기시대 동경(銅鏡)을 여러 박물관에서 대여받아 전시한 다양한 거울들은 대단한 볼거리였다. 청동거울을 보면서 고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상상하며 문명화된 현대인을 톺아보았다.

인류 최초의 거울은 맑고 잔잔한 물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는 물속에 비친 아름다운 자기 얼굴에 도취되어 물에 빠져 죽었다. 이처럼 거울은 사물을 비추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신석기시대에는 흑요석을 다듬어 돌 거울을 만들었고, 청동기시대에는 구리와 주석을 주조하여 청동거울을 만들었다.

청동거울이 무덤 속에서 발견됨으로써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역사적인 자료가 되었다. 청동거울은 왕릉이나 부족장의 묘에서 출토되기 때문에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권위적인 보물이었다. 그래서 청동거울은 현세에서의 권력과 부귀를 상징하며,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신성한 의례 도구였다.

청동거울은 한쪽 표면을 매끄럽게 갈아서 얼굴에 비췄고, 다른 쪽은 각종 무늬와 상상의 동물을 새겨 넣고 그들의 염원을 기록했다. 청동거울에 새겨진 글자는 고대 한자인데 그중 몇 개를 한글로 풀이하면, “집안이 언제나 부유하고 귀하게 산다(家常富貴)”, “해와 달처럼 변하지 않는 마음을 잃지 말고, 충심을 잃지 말고, 그 마음을 사라지지 않게 해라”, “자손이 영원히 번창하고, 그들의 수명이 금과 돌처럼 오래가며, 아름답고 훌륭한 삶을 살길 바라는구나”

청동거울에 새겨진 글은 잘 살고자 하는 마음, 가족에 대한 마음, 자신을 섬기는 나라에 대한 마음, 자신을 성찰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청동거울이 전하는 말을 보니 현재 우리들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나 제나 사람이 가는 길은 같은가 보다. 그래서 고시조에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 고인을 못 뵈도 가던 길 앞에 있네”라고 했다. 옛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자기의 영혼을 보는 것처럼 자신을 성찰했으리라.

우리는 매일 거울을 본다. 그런데 거울은 우리의 모습을 비춰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고대와 중세 시대에 거울은 청동, 주석, 은 등의 금속으로 만든 원형 판이었다. 1835년에 독일의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유리로 거울을 발명하여 대량 생산하게 되었다.

유리 거울이 발명되어 여러 가지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문화와 문명은 더욱 발전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갔을 때, 루이 14세 때 만든 것으로 357개의 대형 거울로 장식한 화려한 ‘거울의 방’이 있었다. 이 방에서 1919년 6월 28일에 제1차 세계대전을 종결한 베르사유조약이 체결되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거울을 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외모를 쳐다보지만 정작 내면의 마음은 제대로 보지 않는다. 거울을 볼 때는 자기의 생각과 감정, 마음 상태까지도 파악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삶은 자기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이 청동거울에 교훈이 되는 말을 새겨두고 거울을 보았듯이, 우리들도 자신을 성찰하는 마음으로 거울을 보면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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