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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기 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 황제의 역사 (7)

2018. 07.12. 18:25:20

서로마의 후계자임을 자부하는 신성로마제국은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800여년의 역사를 닫는다. 형식과 실질이 그리 일치하지 않았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는 새로운 유럽의 패자 나폴레옹에게로 이어진다.

멀리 프랑크의 샤를마뉴, 더 멀리로는 카이사르의 적통을 잇는 것이 자신이라는 나폴레옹의 자부심에 대한 대관이었다.

그리스와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은 카이사르에는 못미치지만 서로마 제국보다는 훨씬 더 넓은 땅을 지배하였다.

1812년의 러시아 원정 실패와 1813년 10월의 라이프치히 전투 패배로 결국 영광을 뒤로 하고 말지만 황제를 자칭할만한 충분히 위대한 업적이었다.

카이사르부터 나폴레옹까지

1815년 나폴레옹이 재기에 실패해 세인트헬레나로 영원히 떠나고 37년이 지나 나폴레옹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가 잠시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이 때의 황제는 '유럽'이 아닌 그냥 '프랑스'의 '왕'일 뿐이었다. '황제'는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든 실제적으로는 '유럽의 군주', 최소한 '서유럽의 군주'여야 했다. 나폴레옹의 영광과 함께 '황제의 역사'도 막을 내린다.

우리나라는 1897년 2월 '왕'을 '황제'로 개칭한다. 바로 외세의 개입과 국가 리더들의 무능으로 이 땅에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만신창이가 되어 있던 때다. 1894년 황제의 나라 청이 일본에 패한 상태에서 우리도 황제를 칭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때문이었을까. 영광과 긍지로 가슴이 벅차올라야 할 '황제'라는 말이 오히려 아픔과 안쓰러움으로 다가온다.

말은 얼마든지 형식으로 꾸밀 수 있으나 느낌은 현실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영광과 긍지가 현실이 아니었고, 느끼는 이가 다름 아닌 이 땅의 사람이라면 아픔과 안쓰러움이 정상이다. 조선시대 중기의 문인 임제(1549-1587)는 임종을 앞두고 자식들에게 '곡을 하지 말라(勿哭辭)'는 말을 남겼다.



사방팔방의 오랑캐들이 모두 황제를 칭하는데

오직 이 땅 조선만이 중국을 주인으로 받들고 있으니

내가 살아 있든 죽어 있든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내 죽은 뒤 곡도 하지 말라

(홍만종, 순오지, 2014, 신원문화사, 43면 참조)



중국의 '황제'는 진시황제를 제외하고는 대륙의 최고권력자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이에 반해 서양에서의 '황제'는 역사의 굵은 궤적과 당시의 패권 구도를 함축하고 있다. 동시대에 한 명의 황제가 존재하든 두 명의 황제가 존재하든, 또 그 호칭이 명실상부하든 아니면 단순한 형식에 지나치지 않든 황제라 불리는 이와 그 주변 세력은 항상 그 시대의 주류였다.

특히 실제가 호칭과 명실상부할 경우 그 황제는 당대 아니 인류사에 있어 실로 위대한 인물이었다.

서양역사 궤적·패권구도 흐름

유럽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하나일 때는 주로 페르시아 또는 이슬람과 대립하고 둘일 때는 대체로 동·서로 대립하곤 하였다. 또한 세속의 권력과 영혼의 종교가 서로의 현실적 필요에 따라 연합하고 또는 대립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황제라는 존재가 있었고, 또 그 중심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인물은 여지없이 황제를 자칭하고 나섰다. 카이사르부터 나폴레옹에 이르기까지 내내 그랬다.

따라서 유럽의 황제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다름 아닌 서양 역사의 궤적과 패권 구도의 흐름을 읽는 의미를 지닌다.



※출처: 신동기 저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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