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도쿄올림픽 이야기다. 일본은 성공개최에 자신감이 찬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위기감과 불안의 그림자도 짙어 보인다. 제32회 도쿄올림픽은 '평화 올림픽'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을까? 선택은 일본에게 달려 있다.

아베정권은 정치적 위기 때마다 한반도의 긴장국면을 활용해 곤경을 탈출하고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전후 일본정권의 특징은 제2차 세계대전 전의 식민지 지배나 침략전쟁의 가해책임과 정면으로 맞서지 못한 것이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도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불충분한 역사인식'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한일 관계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국민감정이 연결되어 있는 휘발성이 큰 이슈다. 스포츠에서도 이 공식은 예외 없이 적용된다. 근대 올림픽 정신은 세계평화 증진에 있다. 아베정권의 모순이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욱일기의 경기장 반입을 허용하겠다고 선포했다. 더 큰 문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입장이다. IOC는 욱일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사안별로 대응하겠다고 한다. 욱일기 사용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이 깃발은 태평양 전쟁 때 사용된 전범기로 성격이 규정돼 있으며, 현재 일본 해상자위대의 군기로 사용하고 있다. 군기인 해상자위대 깃발이 올림픽 응원에 사용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IOC는 이 모순에 왜 침묵하는 것일까? 그 답은 올림픽이 자본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올림픽은 스폰서와 후원사들이 있으며 최상위 단계에 13개 기업이 있다. 이 가운데 3개가 일본 기업이며, 우리 기업은 삼성전자 한 곳뿐이다. 올림픽 공식 후원사 중 미국에 이어 일본이 두 번째로 많다. 이런 이유로 강력한 자본력이 영향을 끼쳐 일본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스포츠를 통한 세계평화 증진과 인류애 실천이라는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는 일로 매우 유감스럽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역사를 뒤돌아보라고 했다. 욱일기는 나치 독일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깃발과 같은 전범기다. 갈고리를 뜻하는 '하켄'과 십자가를 뜻하는 '크로이츠'가 합쳐진 하켄크로이츠는 고대 게르만 문화에서 유래했다. 히틀러는 행운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국기로 지정하고 아리안 우월주의와 반유태주의로 변질시켜 제2차 세계대전에 활용했다. 패전 뒤 유럽에선 하켄크로이츠 사용이 금지됐지만 일본은 정반대다. 패전 뒤 욱일기는 사라졌지만 1954년 자위대가 만들어지면서 되살아났다. 일본은 전범기라는 역사적 사실을 감춘 채 풍어기원과 출산 축하, 지역축제 등 오랜 세월 사용돼 온 전통문양이라고 홍보한다. 진실을 알 수 없다고 거짓임을 모르는 건 아니다. 일본의 반성 없는 태도 탓에 욱일기는 침략 전쟁의 피해를 입은 나라들 말고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일은 지속적 사과와 피해보상에 대한 실천을 했지만, 일본은 과거를 받들어 모신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른 패전국인데도 '패전' 대신 '종전'이라고 주장한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봉기 기념탑 앞에서 독일 브란트 총리가 무릎을 꿇고 사죄했던 광경을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과거사를 대하는 일본과 독일의 태도는 너무도 다르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악의 원인을 사유하지 않음"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을 인용하면 "2020년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사유를 하고 있지 않다." 진정 어린 사과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올림픽에서는 어떠한 정치적 행위도 금지한다. 욱일기는 아베의 군국주의 부활 의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행위가 될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 연결된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인류의 몫이다. 잘못된 역사인식을 가지고 올림픽의 가치를 훼손해선 안 된다. '총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대변동'에서 "반성에 더한 진실된 행동이 독일처럼 일본에서도 행해질 때까지 한국인과 중국인은 일본의 형식적 사과를 계속 불신하며 일본을 미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를 둘러싼 투쟁은 미래를 향한 투쟁이다.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의 현명한 결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