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내게 "밥 먹었어?"에서 "식사하셨어요?"로 바뀌었는지 잘 기억 나지 않는다. 밥은 원래적 의미로는 전통적으로 먹어왔던 곡물을 이용한 모든 주식의 총칭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주식으로 먹는 밥의 의미가 단순한 요리의 명칭을 넘어서 아침, 점심, 저녁과 같이 배고픔 해소와 에너지 보충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음식 섭취 즉 식사를 의미한다. 밥은 일상생활에서 격의 없이 주로 쓰이고 식사는 좀 더 상대방을 높이거나 공식적인 상황에서 사용된다. 매일 밥을 먹거나 식사를 하거나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에너지원을 얻는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런데 유독 나의 가족, 지인들은 내 안부를 물을 때면 제 때에 식사를 하였는지를 묻곤 한다. 아직도 무언가 바쁜 일이 있을때면 밥 먹는걸 후 순위로 하고 다른 어떤 상황에 몰입하는 나의 습성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내가 밥 먹는 걸 잊어버리고 그 무언가에 몰입해 있을 때는 대부분 어떠한 예술이 매개된 상황 속에 있을 때이다. 음악과 함께이거나, 책을 보거나, 공연장에 있거나 전시장에서 나를 압도하는 예술작품 앞에 설 때면 식사 즉, 먹는 행위를 내적 풍요와 맞바꾼다. 그러니 엄밀하게 말하면 밥을 먹지 않는 게 아니라 나는 영혼의 밥을 먹고 있는 셈이긴 하다.

예술을 음미하다 보면 내 마음이 한결 부드럽고 풍요로워진다. 직장인이다 보니 퇴근 후엔 시간이 많지 않아 점심시간 틈틈이, 또는 주말에 시간을 낸다. 점심시간이 12시부터 오후 1시 까지라 차를 가지고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예술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이 빠듯하다. 이럴 땐 차 안에서 이동하며 간단히 배고픔을 때운다. 이마저 시간이 안되면 한 끼쯤 건너뛴다. 그럼에도 예술은 분명 영혼의 밥이 되어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하루 삼시세끼 문화가 일반화된 것도 근대화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우리 민족에게 식사를 뜻하는 단어는 아침과 저녁을 가리키는 조석(朝夕)만 있었다. 19세기 중엽의 학자 이규경(李圭景(1788∼1863))이 쓴 백과사전 형식의 책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낮이 길고 일을 많이 하는 음력 2월부터 8월까지 일곱달 동안만 하루 세끼를, 낮이 짧고 일이 별로 없는 9월부터 2월까지는 하루 두끼를 먹는다"고 기록되었다. 늘 하루 세끼를 먹는다는 것도 어찌 보면 동시대의 문화일 뿐이다.

"저는 예술을 잘 몰라요" "막막하네요", "전문지식이 없어요" 예술을 알아야만 이해해야만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싶다. 다만 나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경험'하기…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예술 또한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될 것이다.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반복해 관람할 때가 있다. 공연 때마다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같은 연주자인데도 오늘의 연주가 다르고 내일의 연주가 다르다. 수많은 요소들이 연주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그날그날의 관객들의 반응은 더 좋은 공연으로 만드는 마지막 한 끗 차이다.

삶의 고비고비마다에 있었던 어려움들을 나는 예술로 채웠던 것 같다. 예술이 내 삶의 일부였기에 '그래 내 삶이 아름다웠다'라고 지금 이 순간 내가 나에게 말할 수 있음을 믿는다.

음악가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은 언젠가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고 한다. "작곡은 제게 큰 기쁨입니다. 창작의 기쁨을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시끄러운 소음이 가득한 생활 속에서 단 한 시간만이라도 자기를 잊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이처럼 창작의 기쁨은 더 말할 나위 없겠지만 문화예술향유의 기쁨 또한 그에 못지않다. 사실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권리이다.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문화예술·관광 분야에서는 문화향유권 확대를 목표로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지난 2018년도부터 도서, 공연비, 박물관, 미술관 입장료 등에 대해서 소득공제를 해주는 문화비 소득공제를 확대 시행하고 있다. 올 한해도 '몸=정신'을 위한 두 가지의 식사를 하며 우리 재밌게 살아봐요.

"담에 밥 한 번 먹자" 보다. 지금 당장 "오늘 식사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