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하고 지혜로웠다. 냉철하고도 혁명적이었다. 20대 총선에서 보여준 '호남민심'의 모습이다. 무사안일과 기득권에만 안주하는 더불어민주당, 야권의 심장임에도 그들에게서 조차 변방으로 내몰린 호남정치, 멀어져 가는 정권교체에 대한 비원. 그사이 수없이 절망하고 한탄하고 고민하던 호남민심이 결국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호남정치도 정권교체도 영원히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지지 야당 교체라는 혁명적 결과로 표출된 것이다. 실제로 호남민심은 수없이 고민 해왔다. 모든 것을 다 바쳐 밀어줬음에도 불구 선거에 연전연패하면서도 반성하지 않는 정당, 기득권과 패권주의에 사로잡혀 그들만의 '이익집단'으로 전락해 가는 정당을 더 이상 지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지지정당 교체를 통해 '호남정치를 복원하고 나아가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게 호남 유권자의 선택이자 명령이다. 생긴 지 2개월밖에 안된 신생정당이 28석 중 23석을 석권한 것은 이 같은 호남 유권자들의 의지와 열망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대목이다." (중략)

지난 2016년 4월 18일 필자가 본지에 쓴 칼럼의 일부다. 당시 5일 전 치러진 20대 총선 결과를 분석하고 진단한 내용이다. 그로부터 벌써 4년이 흘렀다. 21대 총선을 목전에 두고 각 당은 막바지 공천과 선거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의 상황과 같은 점은 무엇이고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같은 점은 호남에 텃밭을 둔 두정당이 경쟁을 벌인다는 점이요, 다른 점은 상호 지지도가 역전됐다는 점이다.

아울러 당시엔 야권끼리의 경쟁이었다면 이번엔 여야 간 경쟁이라는 것이다. 좀 더 들어가 당시 상황을 뜯어보자. 20대 총선 당시 호남은 더불어민주당과 신생 국민의당의 빅뱅이었다. 생긴 지 2개월여밖에 되지 않은 국민의당과 수십년 맹주를 자처 해온 민주당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진 것이다. 민주당은 자만했다. 호남민심이 민주당을 버리진 않을 것이라는 그들만의 착각에 빠져 있었다. '공천만 하면 무조건 찍어 줄 것'이라는 오만함이 극에 달했다.

경선룰을 제멋대로 바꾸고, 민심에 아랑곳없이 전략공천을 내리꽂았다. 호남민심은 분노했다. 더 이상은 안된다는 반민주당 정서가 급속히 퍼져 나갔다. 지역 유권자를 주머니 속 공깃돌처럼 아는 민주당을 이번만큼은 심판해야 한다는 결기가 번득였다. 그 틈새를 노린 것이 국민의당이었다.

민주당을 탈당한 현역의원들이 안철수를 대표로 뭉쳤다. 마음이 뜬 지역 유권자들 에게 대안처를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혁명적이었다. '민주당 전멸, 국민의당 싹쓸이'의 선거 결과가 그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어떤가? 그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촛불혁명'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당시의 민주당과는 비교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또한 어느 지역보다 높다. 그래서일까? 반성하고 고개 숙이던 낮은 자세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민심 위에 군림하려는 모습이 당시와 똑 닮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치러진 공천 행태를 보면 굳이 말 안 해도 익히 알 수 있다. 민심은 아랑곳없이 '불법·타락·구태'로 일관한 그들만의 리그를 보며 한심함을 넘어 탄식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 오만방자함이 2016년에 비해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나만의 생각 일까? 흑색선전·고소·고발에 불복·재심 등등. 여기에 일방적 선거구 떼주기, 전략공천, 경선룰 번복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버겁다. 역시 '공천만 하면 찍어 줄 것'이라는 그들만의 자신감(?) 때문이리라.

호남민심은 또다시 고민한다. 2016년 4월 13일, 그날의 선택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아울러 민주정부 재창출을 기원 하지만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건 당시와 닮은꼴이다. 호남은 나라의 중대한 고비 때마다 혁명적 결단을 해 왔다. 그리하여 역사의 물꼬를 바꿔 놓았다. 그만큼 상황을 냉철히 보고 현명한 판단을 해 왔다는 것이다. 이성을 상실한 민주당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