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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무산 시인./창비 제공 |
한국 노동시를 대표하는 백무산 시인의 신작 시집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가 출간됐다. 백석문학상 수상작인 ‘폐허를 인양하다’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열번째 시집이다. 1984년 무크지 ‘민중시’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노동자들의 삶과 의식을 대변해왔던 시인은 그 동안 끊임없는 시적 갱신과 변모를 거쳐 노동시의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노동하는 삶의 가치와 인간 존재의 근원을 성찰한다.
그의 시에서 ‘인간’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다. 그리고 그 작품 속 인간은 대부분이 노동자로 등장하며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도록 강요받는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기본적인 사회의 기반을 지탱하는 것이 ‘노동자’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망각하곤 한다. 하지만 시인은 작품 속 노동자와 현실을 살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을 ‘죽은 노동자’라고 명명한다. 그들은 목표도 의미도 없이 생산성과 효율성을 위해 자기 통치를 위한 기예로서의 의례를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그리고 이러한 무의미한 노동은 ‘있는 자’들이 뿌리 깊이 세워 놓은 근대문명이라는 이름 하에 쳇바퀴처럼 계속된다.
백 시인은 사회 전반을 ‘인간성’이라는 이름으로 ‘없는 자’들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있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흔히 인간성이란 칸트나 마르크스 등 다양한 철학자들 사이에서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나 흔히 ‘사람의 됨됨이’라는 뜻의 긍정적 표현으로 쓰인다. 하지만 백 시인에게 ‘인간성’이란 무엇보다 ‘무언가를 혐오하고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동물과 유일하게 구별되는 인간만의 고상한 습성’이다.
그는 인간의 인간성을 부정하고 비판하며 인간성 ‘바깥’에 초점을 둔다. 인간 중심의 분류 체계를 거부하고 비인간적 존재들을 껴안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성이란 실상 누군가의 작은 기쁨을 위해 누군가를 벼랑으로 밀어붙이는 평범한 일상’이라고 말하며 사회적 약소자들을 잉여인간 취급하는 ‘희생의 시스템’이 작용하는 근대문명을 강하게 비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같은 공간이지만 매우 다른 세상”이라고 말하는 백 시인의 말을 통해 기층민들은 어디로 이동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지층처럼 쌓인 이들은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하며 소모적인 일상에 지배당한다. 이들의 삶은 스스로를 소외하는 지친 나날에 불과하다. 그리고 현실의 정치는 항상 근대 문명 속에 기생하고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자본주의 속 부품에 불과한 노동자들의 삶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그는 “문학인이 이러한 제도권 정당정치에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위임하고, 수동적으로 동원되는 일은 문학적으로 어긋난다”며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존재로서 우리 스스로가 구체적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임을 자각하고 다른 정치, 새로운 정치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곧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돌아온다. 이미 우리는 근대 문명의 산물이자 일부가 되었고 원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현실을 살아가는 죽은 노동자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몸에 피가 흐르는 주체적인 인간임을 잊지 않는 이상 ‘있는 자들’로부터 부여받은 ‘자본주의 사회의 부품’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우리 개개인이 가진 정당한 권력인 선거를 통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한 표를 행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오지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