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문학관' 이름을 붙인 장소가 무려 104곳이다. 하지만 문화의 수도를 자처하는 광주광역시에 역설적이게도 문학관 하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짚어볼수록 실망스럽기만 하다.

광주는 어느 지역과 비교해보아도 문학적 자산이 가장 풍요로운 고을이다. 광주는 문학관 건립에 우물쭈물하다가 많은 세월을 보내버렸다. 늦게나마 후발주자 광주가 문학관 건립에 적극성을 보였다고 했으나, 그 장소 결정에 있어 결국 독배를 들고 말았다.

광주문학관 건립은 1996년부터 거론되어 추진 됐으나 무효가 되면서 장장 25년에 걸친 우여곡절 끝에 2019년에 이르러서야 '광주문학관 추진위원회' 결정사항으로 이루어지게 됐다. 필자는 2020년부터 광주문인협회장 자격을 지니고 당연직 위원으로 들어갔으나, 이미 광주문학관은 북구 각화동 시화 마을이라는 부적합한 장소로 이미 결정돼 버린 상태였다. 문학관 입지에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접근성'이다. 광주 시민의 사랑을 받아야 할 문학관이 인적이 드문 장소에 위치하여 오히려 그곳의 유동인구를 늘릴 수 있을까? 어불성설이다. 들어서는 입구는 소잡하고, 주차장 부지가 없으며 주변은 고속도로여서 굉음이 계속되는 여러모로 보아 최악의 장소임이 분명하다. 이런 곳에 문학관을 지어서 과연 문화도시를 대표하는 문학관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식견이 있는 인사들은 하나같이 걱정이 앞선다.

무등산과 광주는 가사문학의 성지이다. 이곳의 문학적 성과를 빼면 아예 한국문학의 역사를 쓸 수 없을 만큼 광주의 문학적 성과는 크고 눈부시다. 그뿐인가. 우리의 근현대문학사에서 시문학파의 출현은 가히 '극광'의 체험이었다. 이를 만들고 주도한 이가 광주출신 박용철 시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광주광역시가 문학관 건립에 팔짱끼고 방관하던 세월 동안 강진군에서 '시문학파 기념관'을 설립하였고, 담양군에서는 '한국가사문학관'을 유치하고 아예 기존의 '남면'을 '가사문학면'으로 행정명칭까지 변경하면서 문화관광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한 상태다. 광역시의 위치에서 많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한 상태이다. 광주의 문학관은 여전히 동면상태이고, 그나마 서둘러 추진하고 있는 건립 예정지가 군색하고 불편한 지금의 각화대로라면 완공 후 겪을 후회의 쓰나미를 어찌 감당하려고 하는가. 정해진 일정에 따라 막무가내로 2022년 완공만을 목표로 달려가는 현실에 걱정이 앞선다. 짓고 난 후에 장소의 부적합성으로 겪을 추후의 불평과 불만은 필연적인 것인가.

줄곧 광주문학관 추진에 관여해온 김종 시인은 "문학관 장소 선정은 문학관 건립의 첫 단추이자 완성"이라면서 지금의 장소에 문학관을 짓는 것은 문학 창고 이상의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지어놓고 애물단지로 전락할 바에야 짓지 않는 게 낫다는 의미이고, 필자도 괘를 같이한다. 안타깝게도 행정당국에서는 부적합한 장소라는 다수의 의견에 귀를 닫고 절대 변경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쳇말로 헌법도 바꾸고 올림픽도 연기하는 세상이다. 문학관을 위해서는 건립 시기를 늦추더라도 경청하는 것이 맞다.

전제할 것은 언제 건립해도 광주문학관은 제대로 된 명품문학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고 끝에 악수 두더라고 늦었다고 서두르는 지금의 광주문학관은 한 번쯤의 심호흡이 필요하다. 답답하고 또 답답할 따름이다. 시설이나 공간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변개 가능하지만 한번 지어지면 장소는 영원히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광주 문학관은 장소결정에 있어서 독배를 들었다. 이 독배를 축배로 바꿀 수 없을까. 최악에서 최선을 찾아야 한다. 중외공원 시립미술관과 연계되는 장소도 좋고, 광주공원 시민회관을 개조하여 접근성을 높여도 좋다. 필자가 주장한대로 '서호'라 불리는 서구 운천지도 좋다. 우선 시청입장에서 주차장, 소음, 진입도로를 제대로 확보해 광주 시민들이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인접의 문학관이 광주 문학과 불가분의 관계인만큼 공유가 되도록 시스템화할 필요가 있다.

문학관 설계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었지만 양이 차지 않는다. 다수의 대중이 모일 공간이 부족하고, 환상성을 염두한 설계가 자칫 문학 본연의 의미를 흐리게 할 우려가 있다. 엄청난 보완이 필요하다. 광주문학관은 AI광주시 컨셉에 맞춰 차별화 돼야 한다. 원격으로 소통하는 프로세스가 있어야 하고, 번역 플랫폼을 만들어 세계 문학과 소통되어야 한다. 늦었지만 문학관 본산의 역할을 해보자는 뜻이다. 인공지능과 결합하여 광주 문학의 참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만 시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행정당국으로서는 확보된 예산으로 짓는 건물이니까 정해진 장소에다 밀어붙이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지어진 다음이 불을 보듯 그려지는데 어떻게 박수만 치겠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문학관은 이 지역 문화자산의 백년대계이다. 광주 문학관이 광주 시민들뿐 아니라, 광주를 찾는 타지역 사람들까지도 당연히 찾아야 할 명소가 되어 축배를 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