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출간된 카뮈(Albert Camus)의 소설 <페스트>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출판계에 따르면 이 소설은 금년 1~8월중 18만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추정되며, 금년중 최소 20만부 이상 팔릴 것이라고 한다. 다시 인기를 끄는 이유는 전염병 창궐이라는 상황이 현재 우리와 비슷할 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맞서 헤쳐나가는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우리 모습을 반추하고 성찰하여 코로나 위기 극복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리라.

카뮈는 2020년 온 지구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 위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글을 써 간다.

'페스트'가 창궐하기 전 알제리의 작은 도시 오랑은 현재 우리가 사는 도시와 많이 닮았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일하고 소소한 행복을 찾는 평범한 삶을 산다. 갑작스레 '페스트'가 선포되고 도시는 폐쇄된다. 대재앙 앞에 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다 다르다. 어떤 이는 방관하거나 초월적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맞서 싸우는 것을 선택하는데, 결국 연대하고 투쟁하면서 전염병을 물리친다.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공동체의 부조리에 대처하는 4가지 인간 유형을 그린 것 같다. 첫째는 원칙과 정의에 따라 성실히 일하는 인간으로 의사 리유이다. 둘째는 리더를 믿고 따르며 묵묵히 주어진 일을 책임 있게 실천하는 인간으로 여행자 타루와 시청 공무원 그랑이다. 셋째는 처음에는 반대편에 서지만 어떤 계기로 돌아서서 협조하는 인간으로 기자 랑베르, 파눌루 신부 등이며, 마지막은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여기고 그것을 이용하는 악인 범죄자 코타르다.

카뮈는 주인공 리유를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걸려도 남에게 옮기지 않는 것이며, 걸렸으면 살아남는 것'이고, '(전염병과 싸우는) 이 모든 것이 영웅주의와는 상관없다. 이건 성실성의 문제다. 전염병과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며, 내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부조리를 끝내기 위해서는 영웅이 아닌 소시민들이 힘을 합쳐 끝까지 인내하고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카뮈는 '페스트'와 싸움에 영웅이 있었다면 늙은 그랑이라고 말한다. 그랑은 가족도 없이 낮에는 시청에서 일하면서 밤에는 리유를 도와 공중보건대 일을 하고, 집에 가서는 글을 쓰면서 자기만의 일에 몰두한다. 보잘것없고 눈에 띄지도 않는다. 약간의 선량한 마음과 소설을 쓰겠다는 언뜻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이상밖에는 가진 것이 없지만, 사람들이 죽어가는 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만은 성실하게 해내려 노력한다.

올해 초 설 연휴를 앞두고 국내에 상륙했던 코로나 위기가 추석을 지난 지금도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시청에서 날아오는 확진자 숫자와 동선을 파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가까운 사람들과 만남조차 꺼려지고, 즐겨 찾던 곳이 하루아침에 기피 장소가 되며, 해외여행은 옛일이 되었다. 백신이 바이러스를 종식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임상시험 소식에 귀 기울이기도 하지만, 백신이 나와도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뉴스가 쏟아진다. 그야말로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온몸을 짓누르는 시대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불안하고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손 씻기와 기침 예절 같은 진작에 실천했어야 할 위생 습관이 자연스레 몸에 배어간다. 마스크 쓰기로 감기가 크게 줄어든다. 수시로 전해지는 안전안내문자는 역설적이게도 나 자신이 지역사회와 국가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된다. 너의 안전이 곧 나의 안전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공동체 안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힘들어한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고통은 더욱 크다. 방역당국, 의사나 간호사 같은 분들이 코로나와 전쟁 최전선에서 싸우지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서는 시민 각자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에 따라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타인과 만남을 최소화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 위기에 맞서는 최고의 방법은 우리 모두 소설 속 '그랑'이 되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참고 견디어 이겨내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