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지역
문화
스포츠
기획
특집
오피니언
사람들
전매광장
화요세평
열린세상
데스크칼럼
사설
에세이

<열린 세상> 공부 잘 해야 하는 도시

2022. 05.29. 18:04:58

<열린 세상> 공부 잘 해야 하는 도시
정진탄 월간국장 겸 논설위원

올해 전남대 로스쿨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50%를 훌쩍 넘었다. 지방 거점국립대 로스쿨 가운데 최고 수준의 합격률로 명성을 전국에 알렸다. 전남대 주변 카페에 가보면 이곳이 카페인지, 공부하는 독서실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학업 열기가 매우 높다. 아예 카페 측도 로스쿨생 같은 학생을 위해 스터디룸을 별도로 설치해 토론과 논쟁을 할 수 있게 했다. 실제 그들의 열공 모습을 보면 기업체 중역회의를 방불케 할 정도로 진지하고 때론 자유롭다.

로스쿨·취준생 위한 카페

전남대 로스쿨생은 지역 내에서 소위 잘 나가는 학생으로 평가된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로스쿨에 합격하거나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면 사법고시 합격 버금가는 정도의 축하를 해준다. 지방대 취업난 속에서도 생존해 가는 그들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로스쿨생이 아니어도 취직 공부를 열심해 지방 혁신도시 또는 수도권에 있는 공기업과 대기업에 합격하면 그 학생 역시 칭찬과 축하의 대상이다. 또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대학 캠퍼스 내에 플래카드가 내걸린다.

광주지역 학부모는 자녀가 일찍이 중학교 수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어떻게든 서울이나 경기지역 외국어고, 전북지역 자사고 등으로 보내려 애쓴다. 왜 그런가 하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광주에 보낼 그런 학교가 없고, 지역 일반고로 보냈다가 자식의 실력이 저하될까봐 그러는 것 아니겠나. 외국어고·자사고에 들어가 졸업하면 그 학교 동문이란 울타리가 생기는데다 우수 학생과 친구가 되고, 또 그렇게 되면 일류대학으로 진학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이후 사회생활을 할 때는 이미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해져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대형창고형 매장이 광주엔 없어 타 지역으로 원정쇼핑까지 가는 마당인데 자녀 교육에 물불을 가리겠는가. 지자체나 지방 학교에서 아무리 인재육성을 외쳐본들 내 자식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욕망이 강하면 정책 약발이 받기 어렵다. 더욱이 인재육성이 일류대학의 진학과 졸업생 숫자로 기준을 삼는 방식이라면 지방에서 인재육성은 진작 물 건너간다.

광주에 외국어고 설립은 정말 언감생심이다. 능력 있는 부모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녀를 타 지역 특목고로 보내려 혈안이고 성공하면 다른 부모로부터 부러움을 받는다. 그 자녀가 서울대로 직행하면 무슨 말이 필요 있으랴. 지방 청소년은 어떻게든 ‘인서울’해서 그곳에서 고교 또는 대학을 졸업한 뒤 내로라하는 기업에 취직하는 게 성공한 인생으로 평가된다. 특히 교육시설뿐 아니라 경제적 인프라가 열악한 광주에선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광주는 공부하지 않으면 특별히 놀며 출세할 환경이 조성된 게 아니어서 열공하는 것만이 거의 외길처럼 돼 있다.

언젠가 전남대 주변 유명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음미하고 있노라니, 옆자리에서 청년 두 명이 큰소리로 얘기를 나눴다. 이들은 서로 주말과 휴일이면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끼리끼리 어울려 놀 만한 현대식 복합 상업시설이 없다는 거였다. 그저 이렇게 카페에서 열심히 공부하다 서울로 취직해 청춘을 구가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얼마 전 만난 광주시 간부공무원은 퇴임 이후 지역 청년의 멘토로서 활동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인서울, 대기업 취직’의 획일적인 방정식을 깨기 위해 민간조직을 구축해 돕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광주 청년들은 취업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가 발전’을 하지 않고선 안 되게끔 돼 있다. 이런 청년들의 어려움을 해소해주고 정신적인 지주가 돼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광주 학부모들은 빈곤한 도시 속사정을 너무 잘 알아서 어떻게든 자녀를 서울로, 청년들은 직접 현실에 부대껴보니 거주지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작심하는 상황에선 지방자치가 잘 돌아갈 리 없고 지방대학교 운영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 국가와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광주를 배려하고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광주가 괜찮은 도시가 될까.

지방권력 후보 도시 방향

광주를 움직이는 리더,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미래 발전 방향을 어떻게 잡아갈지 시급히 재논의해야 한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 TK(대구·경북)에 미치지 못하는 인구·경제 규모를 어떻게 해서 키울지 재논의해야 한다. 도시 규모를 키우지 못하면 광주만의 질적인 자치를 어떻게 구현해갈지 재논의해야 한다. 현안 사업 몇 개 성공시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단편적으로 선거 공약을 발표하는 것쯤으로 대응하는 것은 탈광주를 얕잡아보는 것이다.

탈광주는 청년들 사이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성공적인 탈출 수단이 슬프게도 공부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광주가 지금 그런 도시다. 이번 지방권력을 쥐기 위해 쟁투를 벌이는 후보자들은 진정으로 광주를 사랑하는지, 과연 사랑하는 방식이 맞는지, 시민 속마음을 진짜 헤아리고 있는지 자문해보기 바란다.

정치

사람들

경제

사회

기사 목록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