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효 신임 감독 선임 당시에도 큰 희망은 가지지 않았다. 네임밸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초보’감독이기에 팀을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개막전부터 패배였다. 이제 막 K리그2에 입성한 김포에게 지면서 비관적이 됐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이후 광주는 ‘절대 강자’로 선두를 내달렸다. 4월 초 1위에 오른 광주는 그달 16일부터 1주일가량 2위로 내려간 것을 제외하면 ‘독주 체제’를 굳히면서 일찌감치 승격을 예약했다.
시즌 내내 승승장구한 광주는 K리그2 역사까지 갈아치웠다. 정규리그 4경기를 남기고 우승을 확정, 1부로 직행했다. 광주의 우승은 K리그2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거둔 우승이었다. 또 시즌을 마치면서 K리그2 역대 최다승점(86점)을 기록했고 25승 11무 4패로 2부 역대 최고의 성적표를 남기고 1부로 향했다.
광주 팬으로서 이렇게 편안하게 시즌을 보낸 건 행운이다. 애간장을 태우며 승격을 하니 못하니 하는 걱정은 리그 중반 이후 해보질 않았다. 광주의 승격은 2부리그지만 1년 만에 우승을 일궈낸 초보 감독의 힘이 컸다. 취재 현장을 떠났기에 직접 만나보지도 못했고, 그동안 많은 지도자를 본 것은 아니지만, 이전 감독들과는 뭔가가 달라 보였다. 물론 우승과 승격이라는 성과를 냈으니 말이지만 자신감이 있었고, 그 자신감으로 자신의 목표를 이뤄냈다.
관중석에서 본 이정효 감독은 끊임없이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승격이 확정된 뒤에도, 이기고 있어도 항상 똑같았다. 전반전이 끝나면 라커룸으로 들어가기 전 한참을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다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한 시즌 내내 무너지는 경기는 보지 못했다.
지도자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선수가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천재라고 불렸던 선수가 지도자로서는 합격점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이정효 감독이야말로 준비된 지도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믿지 못했던 팬으로서는 정말 죄송한 일이지만 말이다.
이정효 감독은 2011년 모교 아주대를 시작으로 전남, 광주, 성남, 제주 등 프로 네 개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광주의 역사를 만들면서 드러난 일이지만, 그는 코치를 하는 동안 언젠가 감독을 할 시기를 조용히 준비해왔다고 한다.
이 감독은 부임과 함께 승격을 외쳤다. K리그2 모든 팀의 목표가 똑같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이 감독은 진짜였다. 그리고 이뤄냈다. 무엇보다 K리그2에서도 승격 이후까지 생각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스쿼드로 K리그1에서는 어떻게 경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상상했다고 한다. 우승 이후 준비된 지도자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다니는 이정효 감독이 2023시즌 K리그1에서 어떤 축구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최근 박태하 한국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이 블로그에서 이정효 감독의 전술에 대해 평가한 부분을 인용하자면, 이정효 감독은 트랜지션 상황에서 과감하게 공격 숫자를 늘리고 다양한 스위칭 플레이로 좁은 공간에서 수적 우위를 가져가는 전술을 썼다. K리그 기술연구그룹에서도 이 전술을 굉장히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물론 K리그1에서는 또 다른 전술을 선보일 것이다. 투입되는 예산이 다른, 몸값이 다른 선수들로 구성된 팀을 만났을 때 광주가 어떤 축구를 선보일지 관심사다. 2부도 리그 수준이 많이 올라왔지만, 1부는 또 다르다. 더구나 1부에서는 시민구단인 광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수준의 예산이 투입되고, 비교도 안 되는 몸값의 선수들로 스쿼드를 이룬 팀들을 상대해야 한다.
이정효 감독이 어떤 축구를 보여줄지 지켜보는 것은 올 시즌 K리그를 즐기는 관전포인트다. 준비된 지도자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요구되는 부분이기에 더욱 그렇다. 누구나 각자의 공간에서 위치에서 리더가 된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실하게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 축구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최진화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