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지역
문화
스포츠
기획
특집
오피니언
사람들
열린세상
전매광장
데스크칼럼
사설
에세이

100년의 미감
데스크칼럼-이연수(문화부장)

2020. 02.18. 17:13:44

“내 그림이 100년 후 어떻게 보일 지 생각하면서 계속 새로운 걸 실험해야 한다.”

프랑스에서 60여년간 왕성한 활동을 했던 이성자(1918-2009)는 지역에선 낯선 이름이다. 광양에서 태어나 김해와 창녕, 진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녀는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가정학을 전공했다. 그녀가 파리로 홀로 건너간 건 이혼의 충격을 딛고 의상디자인을 배워 의상실을 열기 위해서였다.

그림을 배운 경험도 없는 30대 주부는 그러나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교수의 권유로 파리에서 회화를 시작한다. 유화, 아크릴화, 판화, 도자, 모자이크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쳤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이 ‘포커스’전으로 올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이성자의 작품세계를 감상하며 그녀의 이력에 눈길이 갔다.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이전 땅의 이야기를 형상화 한 작품들이 좋았다. 타고난 재능과 치열함이 느껴졌고 한국적 정서가 가미된 추상화에선 이방인의 외로움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 했다.

예술적 재능을 이야기할 때 재능은 길러지는 게 아니라 타고난 것이라고들 한다. 타고난 재능이 뒤늦게 빛을 발한 위대한 예술가들은 인생에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은 현대음악을 전공한 음악가였다. 독일로 유학을 떠나 뮌헨대와 프라이부르크 음악학교, 쾰른대학에서 현대음악을 전공했다.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를 만나 자신의 인생과 예술세계에 일대 전환을 맞았다.

‘농원의 화가’ 이대원(1921~2005)은 법대 출신이다. 중년의 나이에 비로소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47세에 홍익대 서양화과 교수로 임용됐다. 그의 작품은 2010년 국내 경매 거래에서 20억원을 넘어 김환기, 이우환, 이중섭, 천경자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1891~1977)도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법학도였다. 의재는 광주에 농림기술학교를 세우고 무등산에 다원과 농장을 열었다.

학교교사, 전도사로 일했던 고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17세에 가출해 길거리에서 생활했던 바스키야, 일흔이 넘은 나이에 화가로 데뷔한 영국 출신 현존 작가 로즈 와일리(Rose wylie, 1934~)도 타고난 본능을 거스를 수 없었던 작가들이다.

86세 고령의 작가이면서 “지구에서 단 한번도 그린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까지 대상을 수십번 다시 그린 끝에 그림을 완성한다”는 로즈 와일리는 올 초 서울 삼청동 초이앤라거 갤러리에서 국내 팬들에게 개인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골프연습장에서 클럽 수선일을 하며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화가의 꿈을 잃지 않고 작품활동을 하는 청년작가 A씨는 이름없는 화가다. 그는 미술대학에 다닌 적도, 개인전을 가진 적도 없다. 하지만 가정적, 환경적 시련은 그의 예술적 재능과 간절한 열망을 가로막지 못했다. 그는 골프연습장 일 틈틈이 지금도 노트에 드로잉을 그려나간다. 한국의 아웃사이더 아트를 보여주는 그의 작품을 알아본 팬들은 SNS로 그에게 무한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성자 화백이 말했던 "내 그림이 100년 후 어떻게 보일 지 생각하면서 계속 새로운 걸 실험해야 한다"에서 100년을 관통하는 미감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19세기 후반 고흐의 그림이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뒤떨어지지 않는 미감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 그녀의 말 속에 답이 들어있다. '시대를 거슬러 새로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감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나선다. 미감도 변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예술은 무한하다. 100년을 뛰어넘는 예술이 유한한 인생을 경외롭게 한다.

정치

사람들

경제

사회

기사 목록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