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봄솥의 꽃망울들이 칙 칙 칙 기적 소리 내며 꽃잎 열고 있다. 뜨거운 혁명처럼 봄의 밑바닥은 달궈져 소란하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봄의 추가 칙 칙 칙 맹렬하게 달리며 꽃피우고 있다. 나도 한때 봄날 같은 청춘의 솥에 쌀알 같은 신앙 한줌과 꿈 한줌을 넣고 열정의 불을 지핀 적이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교회 선교 훈련팀에 합류했다. 날마다 성경 공부와 신체 단련을 했다. 구약과 신약을 통째로 암기하며 육체적인 훈련도 겸비했다. 청춘의 밑바닥에서 끓기 시작한 신앙의 결의가 뜨거웠다. 교회 다닌 지 얼마 안되었기에 쌀알 같은 신앙 한줌이 빨리 뿌리 내리기를 소망했다. 간절함으로 다가가는 우윳빛 뜨물 같은 새벽 기도로 날마다 청춘의 솥을 채웠다. 칙 칙 칙 내달리는 신앙의 혁명은 전도 활동으로 용솟음치며 피와 살이 되는 하루를 만들어 갔다.

어떤 날은 교회 옥상의 눈보라 속에서 농구공을 튕기며 훈련해야 했고, 또 어떤 날은 새벽 3시경에 무등산 산행을 해야 했다. 추위와 싸우고 잠과 싸우며 신에게 복종하는 법을 익혔다. 까맣게 탄 솥의 가슴팍처럼 끙끙 앓으며 앓아눕기도 했지만 잘 이겨냈다. 나는 신앙 안에서 맛나게 지어진 나를 맛보기 위해 뜨거운 불길 같은 훈련을 감당했다. 매번 숨 막히게 차오르는 밥물 같은 강행군이었지만 신(神)에 대한 무지가 깨우쳐지면서 믿음은 깊어져 갔다.

하루는 팬티만 입고 ‘세계 선교’라는 구호를 외치며 달리는 훈련 명령이 떨어졌다. 그것도 광주의 번화가인 충장로 1가에서 5가까지 달리며 외쳐야 했다. 부르르 떠는 솥의 꼭지처럼 민망스러워 옷을 벗기가 망설여졌다. 순종은 불평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일이기에 용기를 내야 했다. 부끄러움 때문에 도전도 못한 설익은 신앙인, 중도 탈락한 김빠진 신앙인은 되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움이 훈련이라는 불길 위에서 졸아들고 보타지면 단단한 자신감이 훈김처럼 서릴 것만 같았다.

옷을 벗은 후 팬티만 입고 충장로 1가에서 ‘세계 선교’ 구호를 외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창피함을 알라며 눈총의 불을 놓았지만 내 청춘의 솥은 밑바닥이 달아오를수록 열정이 불타올랐다. 왼발을 내디딜 때 ‘세계’를 외치고 오른발을 내디딜 때 ‘선교’를 외쳤다. 내 안에 있는 어떤 간절함이 오후 3시를 끌고 힘차게 달렸다. 칙 칙 칙 달리는 팔월의 추로 도심은 뜨거워졌다.

그렇게 이십여 년 가까이 뜨겁게 달렸는데, 어느 날부터 부목사와의 갈등이 커져 갔다. 티격태격 김빠진 교회 생활은 설익은 백기를 들게 했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더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청춘의 솥을 달궜던 열정의 불이 한순간 꺼졌다.

봄나무들이 봄볕으로 갓 지은 햇꽃밥을 차리느라 소란스럽다. 외따로 떨어져 있는 나무만 봄솥의 꽃망울을 아직도 뜸들이고 있는지 꽃이 피어 있지 않다. 오늘밤 저 봄날의 고요는 꽃망울이 터질 때까지 뜸들이며 기다림으로 깊어질 것이다. 청춘의 솥 같은 봄날이 화사한 풍경으로 내 마음을 뜸들이고 있는지 따스하다. 이 봄이 지나면 맛나게 지어진 나를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