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셨던 아버지가 한순간에 군·경에 의해 총살당했습니다. 7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빨갱이 자식’이라는 낙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제대로 된 진실 규명은 허황된 꿈이 아니냐는 생각까지 듭니다.”



●아버지 얼굴 모르고 차별속 삶

여순 10·19사건 당시 아버지를 잃은 권종국씨(76·순천유족회 이사)는 “좌익도 우익도 모르는 평범한 농부셨던 아버지가 한순간에 군인에 붙들려 산속으로 끌려갔다”며 “아버지의 얼굴 한번 뵙지 못했는데, 빨갱이 자식이라는 낙인에 평생을 차별 속에 살아왔다”고 비통해 했다.

권종국씨의 아버지인 권성옥씨(당시 29세)는 1948년 여순사건 당시 평범한 농부였다.

권종국씨가 태어나기 전 그의 아버지는 14연대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12연대 군인과 경찰들에게 체포돼 순천월전중학교 옆 양지멧골에서 월등·황전면 주민 70여 명과 함께 집단 학살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권종국씨는 태어난 후 15년간 어머니와 떨어져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뒤늦게 조부모로부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들었고 비통하고 억울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다고 했다.

당시 승주군(현재 순천시 월등면)에선 여순사건이 발생한지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을 때 12연대 군인들과 지역 경찰이 수확이 끝난 논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14연대를 도운 부역자와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활동을 일삼았다.

그러던 중 권종국씨의 아버지 권성옥씨도 부역자로 포함됐다. 14연대 군인들이 마을을 점령했을 당시 권성옥씨가 군인들의 총이 무서워 식량을 조금 나눠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총살 피하려 ‘손가락 총질’ 난무

당시 주민들끼리는 총살을 피하기 위해 서로 ‘반란군 협조자’라고 가리키며 손가락질을 했다. 이 손가락질은 ‘사형’이나 다름이 없었고, 주민들은 이를 ‘손가락 총질’이라고 불렀다.

권성옥씨는 영문도 모른 채 마을 주민들에게 ‘손가락 총질’을 당했고, 주민 7명과 월등지에서 경찰들에게 체포당해 경찰서로 압송됐다. 체포 이튿날인 11월 19일 12연대 군인과 경찰에 의해 월등면 양지멧골로 끌려가 총살당했다.

아들 권종국씨는 “당시 마을을 14연대 군인과 진압군·경찰이 번갈아 가며 점령했고, 주민들은 살기 위해서 식량을 나눠주거나 이를 밀고했다”며 “아버지께서는 군인에게 식량을 조금 나눠줬다는 이유만으로 총살당했고, 조부모님은 ‘빨갱이의 부모’라는 굴레에 눈치를 보며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학살당한 곳에서 아들의 시신을 찾아 지게에 지고 집으로 돌아오셨던 할아버지의 심정을 성인이 돼서야 이해했다”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함께 평생 ‘빨갱이 자식’이라는 낙인 속에 살았다. 국민학교만을 나온 뒤 주변의 감시와 차별 속에서 죄인처럼 살았다”고 토로했다.

국가폭력에 아버지를 잃은 권종국씨는 지난 2003년부터 10·19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초·중학생 대상 평화인권교육

진실을 알리기 위해 지역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며 학생들에게 여순10·19 평화인권교육도 하고 있다. 대다수가 여순 10·19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인 만큼 학교에서 관련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는 생각에 여순 유족으로서 직접 학생들을 만나 울림을 전하는 중이다.

지난 2022년 정부가 처음으로 여순사건의 첫 민간인 희생자 45명을 결정했지만 권종국씨는 여순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과 피해자의 명예회복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라며 여순사건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권종국씨는 “여순사건특별법 개정은 조사기한 연장과 명예회복이 핵심이다. 희생자 유가족 대부분이 80대가 넘는 등 생계 등의 문제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여순 10·19 사건 국가 기념일 지정, 집단 암매장 발굴 등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여순 10·19사건은 1948년 10월 19일부터 1955년 4월 1일까지 전남과 전북, 경남 일부 지역에 발생한 혼란의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9년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만에 전남도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만1,131명이 사망했다고 발표돼 피해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간 연구단체에서 보고한 피해 규모는 2만7,000여 명이지만 2022년 1월 21일부터 2023년 1월 20일까지 1년간 접수된 피해 신고 건수는 7,465건으로 현저히 적다. 이중 여순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희생자·유족으로 인정된 인원은 708명으로 전체 접수 건수의 10%도 미치지 않고 있다.

이수민 기자

권성옥 여순사건 희생자 /권종국씨 제공

여순사건 희생자 유가족 권종국씨가 중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있다. /본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