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며 정확한 발음으로 마음의 진실을 전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도 그런 자세로 들어야 한다.’ 가끔 독백처럼 읊조려보는 대화의 상식이다.

학창 시절, 존경하고 따랐던 작문 선생님은 잠시 성우를 하셨던 분이었다. 시냇물이 흐르는 듯한 자연스런 목소리는 물론 발음, 단어와 단어 사이의 소리 간격, 음의 고저, 말하는 자세, 심지어 얼굴 표정까지도 어찌나 보기 좋고 듣기 좋은지 작문 시간만 되면 넋을 잃곤 했다. 선생님은 말을 할 때나 책을 읽으실 때나 마음의 온 감정을 모아 정성을 다하시곤 했다.

그런 영향이었는지 나 역시 낭송이나 동화 구연 등 읽고 말하기를 즐긴다. 거기다 직업 역시 가르치는 일이고, 답사 안내며 각종 행사의 진행자 역할까지 간간이 해왔으니 보통 사람들보다는 말을 많이 하고 사는 셈이다. 그렇게 말을 할 때마다 은연중에 은사님의 말하는 방법을 표본으로 삼고 본받으려 애를 써왔다.

한데 요즈음 약간의 혼돈이 일고 있다. 지금 껏 내 전달식 말에만 몰두해 있어서 교감하며 주고받는 상대적 언어에는 서툴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지난번 문단의 한 선배와 한해를 마감하는 자리를 했는데 그 선배를 만나고 난 후 그런 생각은 더욱 절실해졌다. 선배는 큰 목소리를 가진 것도, 말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들릴 듯 말 듯 자분자분 이야기를 시작하기만 하면 주변이 모두 박장대소가 된다. 아무리 처져있는 분위기라도 금방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버리는 마술 같은 힘을 가졌다. 잘하는 말을 고르라면 뉴스를 전달하는 아나운서들을 따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한 말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인생의 반은 성공한 삶이라 생각한다. 동급생들에게 유난히 인기가 많은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곁에는 항상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고민이나 말 못 할 사정이 생겨도 으레 상담의 대상으로 그 친구를 택하곤 했다. 가슴 가득 무수한 언어들을 안고 살면서도 표현을 못 했던 나로서는 그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유심히 살펴본 결과 그 친구는 항상 험담보다는 칭찬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투나 말의 템포, 표정, 자세 등이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진실하고 따뜻했다.

아무리 준수한 외모를 가졌어도 입에서 토해지는 말들이 곱지 못하면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지만, 외모와 상관없이 정갈한 언어와 따뜻한 미소가 있는 사람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말을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라면서 아니 평생을 두고 배우면서 갈고 닦아야 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잘 순화된 말을 쓰는데 듣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 무엇보다 가장 잘하는 말을 들자면 듣는 이의 가슴에 정감이 넘쳐나게 하고 절망보다는 희망이 피어나게 하는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