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이다 보니 오고 가는 인사마다 ‘복 많이 받으세요’이다. 참 듣기 좋은 말이다. 복이란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서 우리 생활 속에도 조금만 눈여겨보면 숫가락에도 복, 베개에도 복, 그릇에도 복이 새겨져 있었다. 그만큼 복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고 가장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복이란 것은 어떤 것이며 무엇을 어떻게 받으라는 것인가. 주면서 받으라 하는 게 원칙인데 말로만 주고받는 것이어서 그냥 기분만 좋으라는 것인가 하면서도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설날이 되면 어린 우리는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다녔다. 절을 한 후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으면 주머니에서 세뱃돈을 꺼내 일일이 손에 쥐어주시면서 덕담도 해 주셨다. 공부 잘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들으라시면서 어린 우리에게도 예외 없이 복 많이 받으라 하셨다. 세뱃돈 후엔 맛있는 것도 내와서 먹거나 주머니에 넣어 오기도 했다. 복 많이 받아라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의 복이란 말에는 세뱃돈의 힘도 실려 진짜로 무언가 모를 복이 내게로 막 들어오고 안겨오는 것 같았다.

예로부터도 복이란 말은 참 즐겨 썼던 것 같다. 복이라면 성경의 팔복도 있지만 수(壽) 부(富) 강령(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떠올리게 되는데 중국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서경(書經)》에 나오는 오복(五福)이다. 곧 하늘이 내려준 천수(天壽)를 다 누리다가 가는 장수(長壽)의 복(福)을 수(壽)라 했고,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풍요로운 복(福)을 부(富)라 했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사는 복(福)을 강령(康寧),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돕는 선행과 덕을 쌓는 복(福)을 유호덕(攸好德), 일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 없이 평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는 죽음의 복(福)을 고종명(考終命)이라 했다.

장인어른은 올 98세이신데 지난해 생신 때는 당신만큼 복 받은 사람도 없을 거라 하셨다. 100세 가까이 건강하게 사시니 큰 복이지만 그보다도 6남매가 모두 결혼했고, 모두 자식을 두었고, 다 70전후가 되었지만 누구 하나 크게 아픈 사람 없고, 이혼한 사람 없고, 아버지 어머니보다 먼저 간 사람 없으니 이런 집이 몇이나 있겠느냐시며 그러니 나만큼 복 받은 사람은 없다고 단언을 하셨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 크게 이름을 날린 자식은 없어도 장인어르신 말씀이 지당하고 또 지당했다. 소확행이란 말처럼 소소하고 확실한 이런 행복이야말로 복이지 않겠는가.

146세를 살았다는 인도의 고토 할아버지는 제발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단다. 자식도 손주도 증손주까지도 다 죽고 없는 세상에 당신 혼자만 살아있다는 것은 결코 복이 아니라 벌이었을 것이다. 그렇고 보면 복이란 소소한 의미로 느껴지는 것이 더 복다울 것 같다. 일찍부터 보통사람의 복으로는 좋은 치아, 많은 자녀, 부부 해로, 오는 손님 대접할만한 재산과 좋은 곳에 묻히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그 기준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요즘은 첫째가 건강이요, 둘째는 좋은 부부관계요, 셋째는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될만한 재산이요, 넷째는 적당한 소일거리, 다섯째는 참된 친구라고 한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다. 많이 가졌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니니 정작 진짜 복이란 하지 않을 것을 하지 않아도 되고 하고 싶은 것을 제약 없이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자유로움과 마음 편함이 건강과 함께 주어지는 것임일 것 같다. 네잎 크로바의 행운을 찾기보다 주어진 세잎크로바의 행복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복이 아닐까. 그런 소소한 복 많이 받으시는 한해들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