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의 계절이다. 코흘리개 유치원 아이들로부터 시작해 학위를 받는 대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인생 여정 속의 한 장을 접느라 부산하다. 대체로 조촐하게 치르는 입학식과는 다르게 졸업식장은 축하 분위기로 들떠 있다. 끝보다는 시작의 의미를 크게 생각하는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아마 무사히 마침에 대한 안도와, 끝 매듭을 잘 지은 후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은 바람에서일 것이다.

하찮은 바느질을 할 때만 해도 쓰던 실의 매듭을 잘 맺어야 만이 새로운 실의 시작에 별 무리가 없다. 또 그 매듭을 얼마만큼 매끄럽게 마무리했느냐에 따라 바느질감의 품위가 결정되기도 한다.

맺고 푸는 일이 어디 바느질뿐이겠는가. 하나의 매듭짓는 일에 섭렵하느라 겨우내 가슴을 조이며 부산하게 보냈다. 나이 서른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홀로 된 조카의 인생 여정을 바꿔주는 일은 첫 혼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동안 조카는 다섯 해가 넘도록 안간힘을 쓰며 살아보려 애를 썼으나 사방에 암담한 벽뿐이었다. 경제적인 문제도 그렇거니와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무엇으로도 대신해줄 수가 없었다. 아이도 맹목적으로 ‘아빠’라는 단어에 목말라 했다.

많은 시간을 고심한 끝에 새 인생을 시작해 보기로 결론을 내렸다. 아이 때문에 마음 결정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시작하려 하니 아이가 또한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해서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산 넘어 산이라고 새로운 시작보다도 지금까지의 관계를 매듭짓는 일이 더더욱 큰일이었다. 소문이 날 만큼 사이가 좋았던 시가 식구들과의 절연은 몇 번이나 눈물바다를 이루어도 쉽지가 않았다. 거기다 조카가 맺어야 할 매듭은 살아 있는 사람들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어지럽게 흩날리는 진눈깨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남편의 묘지로 향하는 조카를 따라나섰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인처럼 조카는 오돌오돌 떨었다. 제수를 차리는 내 손도 바들바들 떨려 집었던 과일조차 데구루루 굴러버렸다.

“아들 잘 키울게요. 나 이제 잊어버리고 놓아주세요.”

못다 한 인연을 서리서리 풀어내듯 목 놓아 우는 조카를 따라 한참을 흐느끼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풍습에서 여자의 길이 그것이 아님을 우리는 둘 다 이미 알고 있다. 손에 익지도 않은 새살림에 새로 얻은 아들까지 아이 둘 뒤치다꺼리하다 보면 무슨 무슨 날이라고 어찌 다른 곳에 시선을 줄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의 생활보다도 몇 배의 노력을 해야 원만한 가정을 이룰 것이다.

조카는 인생의 커다란 매듭 하나를 그렇게 맺더니만 늦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새벽을 가르며 아심아심 새로운 길을 떠났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훗날, 이 커다란 인생의 매듭까지도 아름다이 수용할 수 있는 조카가 되기를 빈다. 매듭은 끝이 아니라 희망으로 향하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간절하게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