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들은 2월을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이라 했다. 꽃바람, 봄이 오고 있다는 말쯤으로 들린다. 그래서일까. 아침에 코트를 입으려는데 어제는 느끼지 못했던 무게감이 느껴졌다. 신기했다. 밤사이에 옷이 더 무거워진 것은 아닐 텐데 옷을 꺼내 입으려는 내 손에 느껴지는 무거움은 이젠 이 옷 그만 입으라는 것 같다.

하루 사이에 달라진 이 느낌은 무엇인가. 삼나무는 40미터의 키에 4-5미터 둘레의 큰 나무란다. 3-4월에 꽃이 피고 10월쯤 열매가 익는데 인디언들은 그 큰 나무의 움직임을 보며 계절을 계산했던 것일까. 3, 4월에 피는 꽃의 꽃바람이 2월부터 시작한다는 그들의 눈썰미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일찍부터 세미하게 보고 느끼며 감지하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문득 ‘바람과 태양의 옷 벗기기 내기’ 동화가 생각난다. 바람과 해가 힘겨루기로 한 여행자의 외투 벗기기 내기를 한 것이다. 바람이 초강력 센 바람으로 옷을 벗기려 하자 여행자는 더 단단히 옷을 붙들었다. 결국 바람이 외투를 못 벗기자 이번엔 태양 차례인데 따뜻한 햇빛을 집중해서 보내자 여행자는 무슨 겨울 날씨가 이러느냐면서 외투를 훌훌 벗어버렸다. 태양이 바람을 이긴 것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도 다가오는 봄을 이길 순 없을 것 같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게 뭘까. 단순히 느낌일까. 갑자기 옷이 무겁게 느껴진다는 것은 옷이 두껍게 느껴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오늘까지만 이 옷을 입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오늘 외출부터 이 옷을 안 입긴 내 나이엔 조금은 불안해서다.

겨울이 오래 갈 것만 같았다. 금년 겨울은 유난히 춥다고 느껴졌다. 물가도 오르고 사람들의 마음도 닫혀있는 것 같아 더욱 추웠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데 튀르키예 강진으로 수만 명이 죽고 수천만의 이재민이 생겨났다는 안타깝고 답답하고 우울한 소식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속에서도 생명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이는 살고 엄마는 죽었다는 안타까운 소식 속에 새삼 사랑을 모정을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게 된다. 사망자가 계속 늘지만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와 아픈 가슴을 쓰다듬게도 한다. 겨울이 깊으면 봄도 멀지 않다는 진리는 희망이고 생명이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참으로 간사하달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요 생각이지만 이런 느낌이 또한 오늘을 살게 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혜안이고 지혜가 아닐까.

그래 맞다. 어제까지 입었던 옷이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진다는 것은 분명 계절이 바뀌었으니 너도 그에 따르라는 자연의 고마운 챙겨줌이고 계절의 사랑스런 신호가 아니겠는가. 아무래도 오늘 돌아오면 이 옷과도 올해는 그만 이별을 해야 할 것 같다. 창밖 나무들도 어느새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봄이 오는 것이었다. 겨울은 겨울일 뿐 봄에 미련 없이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었다. 그게 순리고 자연의 법칙이요 질서였다. 이런 순리와 질서를 사람만 부정하거나 거스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코트 주머니 속 장갑을 안 쓴 지도 꽤 되는 것 같다. 이미 봄은 벌써 이만큼 와 있었음이다. 삼나무에 꽃바람이 불어오고 있는데 그걸 못 보고 못 듣고 못 느끼고 있었을 뿐이다. 무거운 옷이여 겨우내 고마웠다. 네 덕택에 겨울을 잘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만사엔 다 이별의 때가 오는 것 그것이 지금이라면 그 또한 부정하거나 억지 부릴 일이 아니잖은가. 3, 4월 꽃이 피고 10월에 열매 맺을 삼나무를 위하여 이 2월에 불어오는 꽃바람을 나도 봄을 맞는 마음으로 가슴에 안는다. 내 무거워진 옷도 오늘까지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