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을 본다. 생명의 봄이다. 봄은 돌아오는 계절이다. 하지만 떠나는 것도 있다. 해서 산다는 것은 때로 슬픔을 이겨내는 것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속수무책으로 떠나는 이들을 망연히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슬픔으로 가슴에 안은 게 두 달 새에 여섯 분이나 된다. 원로 수필가 네 분과 시인 두 분이 1월과 2월 두 달 사이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민선 통영시장 1, 2기를 지낸 고동주 수필가, ‘수필ABC’의 시인이며 수필가이신 전주 최승범 교수, 한국수필가협회 초대 사무국장 이숙 수필가, 한국문협 및 수필가협회 부이사장을 지내신 김병권 수필가 그리고‘시문학’발행인 김규화 시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오탁번 시인이 가셨다. 인간 수명 100세 시대라지만 80세에서 97세까지 순서도 없이 가는 것을 본다. 그러고 보면 일흔도 넘은 친구가 95세 되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내 손을 붙들고 자기도 고아가 되었노라고 슬피 울던 생각도 난다. 떠나고 보내는 슬픔엔 빠름도 없고 늦음도 없는 오직 떠남만인 한 가지임이리라. 무려 5천 살이나 된다는 미국 캘리포니아 브리슬콘 소나무에 비하면 사람의 100년은 비할 바도 못 되는데 말이다.

2009년 5월 함안 성산산성에선 700년 전 고려시대의 연꽃 씨 10개가 발견되었단다. 그것을 다음 해 파종했더니 10개 중 2개가 발아하여 꽃을 피워내서 ‘아라홍련’이라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동남아에 서식하는 등목어(登木漁)란 물고기는 이름처럼 나무에도 올라가 숨을 고르기도 한단다. 혼탁한 수질과 수초가 많은 극도로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는 그만의 생존법인 것이다. 물 밖 고기를 상상할 수나 있는가. 하지만 이런 일도 가능하고 700년 전 꽃씨가 발아하여 꽃을 피우는 놀라운 기적이 바로 생명의 힘, 찬란하고 눈부신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선 개가 200시간 만에 구조되었고, 사람도 1주일, 15일, 17일 만에 구조된 일이 있단다. 이처럼 산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은 그 어떤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놀라움이고 신비로움이고 눈부심이고 찬란한 기적의 역사(役事)다. 죽은 듯 메말랐던 나무에서 연초록의 잎눈이 트고 나무등걸에서도 파란 생명의 핏줄이 보여지는 삼월, 나도 문득 숨을 쉬고 있는 이 순간이 새롭게 느껴지면서 살아있는 것들 속의 하나인 나를 감격스레 발견한다.

어찌 눈에 보이는 것만이랴. 코로나19와의 3년은 참으로 답답하고 암울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던 말처럼 우린 마스크를 벗고 있다. 마음껏 숨을 쉬고 자유로이 대화를 하고 서로 마주하며 가까이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이런 일상이 바로 살아있음이고 사는 것 곧 생명의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이 모든 것들이 생명일 때만 가능한 것들이다. 피어나고 있는 봄, 그 봄을 따라 물빛이 달라지고 하늘빛이 달라지고 바람의 냄새와 부딪쳐오는 느낌이 달라지고 그렇게 나와 당신의 마음에도 봄빛이 스며들고 있지 않는가. 아마도 지금쯤엔 언 땅을 뚫고 나와 목을 길게 뺀 깽깽이풀 노루귀 바람꽃 솜나물들이 가뿐 숨을 뿜어내며 신기한 듯 사방을 휘둘러 보고 있을 것이다. 그게 봄이다.

나도 오랜만에 베란다의 화초들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하며 시원한 물줄기를 선사한다. 겨울을 잘 이겨내 주어 고맙다. 우리 같이 봄맞이하자. 물줄기 따라 겨울의 묵은 때도 벗어버리자. 생명, 이 눈부신 아름다움을 함께 환호하며 생명의 잔치를 열어보자. 지금 창밖에서 새들도 이런 내게 노래로 함께 하고 있다. 생명, 봄의 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