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제3자 변제’
강성두 법무법인 이우스 대표변호사

정부가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피해 배상 문제와 관련하여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민간기업의 자발적 기여로 조성한 재원으로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는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하는 배상안을 공식화하면서 제3자 변제라는 낯선 법률용어가 일상용어처럼 회자되고 있습니다. 필자는 현재 정치상황과 한걸음조차 떨어져 바라볼 수 없게 된 제3자 변제란 법률용어를 최대한 순수하게(?) 법률가의 관점으로만 접근해서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제3자 변제는 민법 제469조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민법은 총칙, 물권, 채권, 친족 이렇게 네 개의 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제3자 변제는 그 중 ‘사람에 대한 권리’를 규정하는 채권편에 규정되어 있고, 채권편에서도 채권의 소멸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소멸은 용어 그대로 채권이 종국적으로 없어지는 경우를 뜻합니다. 법에 규정된 채권소멸의 방법에는 상계니 혼동이니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난해한 법률용어들도 있지만 면제나 변제와 같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그 뜻이 짐작이 되는 방법도 있습니다.

금전채무 원칙·제한 규정

변제는 쉽게 얘기하면 금전채무의 경우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돈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변제는 당연히 의무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 민법은 유명 음악가의 연주나 소위 일타강사의 강연과 같이 채무자 자신이 이행하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일신전속적 채무가 아닌 바에야 채무자 이외의 제3자가 이를 하여도 채권자에게는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이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채권자는 변제를 받는 것이 목적이지 누가 변제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실 크게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민법은 제3자 변제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면서도 이를 제한하는 규정 역시 함께 두고 있고, 제한하는 범위를 매우 넓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일신전속적 채무와 같이 채무의 성질이 허락하지 않을 때, 당사자가 반대의 의사를 표시할 때, 이해관계 없는 제3자에 관하여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는 때입니다.

정부의 배상방안을 법률적 관점으로만 판단하면, 첫 번째는 채무의 성질이 제3자 변제가 가능한지 여부가 문제될 것입니다. 금전배상이라는 측면만 본다면 일신전속적인 채무는 아니어서 제3자 변제가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 시기의 강제징용으로 인한 피해가 단순한 금전배상의 측면만 있는지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국민적인 공감대도 형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였다면 정부 역시 제3자 변제라는 방안까지 동원하여 배상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로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에는 제3자 변제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지난 13일 채권자인 생존 피해자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는 대리인을 통하여 재단에 제3자 변제를 거부하는 취지의 문서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반대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제3자 변제로 인한 채무소멸효과는 발생할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당사자의 의사는 대법원의 배상판결로 인한 채권이 제3자가 채권자의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변제하여 소멸시켜도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당사자 의사가 가장 중요

마지막으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이해관계가 있는 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해관계가 있다면 자신을 위하여 변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관계는 자신이 변제를 하지 않으면 채권자로부터 집행을 받게 되거나 또는 채무자에 대한 자기의 권리를 잃게 되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변제함으로써 법률상 이익을 가지는 자를 의미합니다. 재단은 재판의 당사자가가 아니어서 자신이 변제를 하지 않더라도 채권자로부터 집행을 받을 일이 없습니다. 또한 재단 스스로도 일본 전범기업들에게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즉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에 해당하여 채무자인 전범기업의 의사에 반하지는 않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채무자체를 부정하는 채무자를 위하여 원하지도 않은 일을 하겠다고 나서 사서 고생하는 모양새입니다.

대통령은 최고의 가치를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가치 아래 국민통합을 이뤄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제3자 변제에서 채권자와 채무자, 즉 양 당사자의 의사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점은 굳이 법률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남의 나라 기업은 그 쪽에 맡겨두고 우리나라 당사자의 의사만이라도 살펴보았다면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는 발언을 하고 ‘반어법도 이해 못하는 국민들은 없을 것’이라고 애써 변명하는 도지사까지 나올 필요는 없었을 것인데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