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이젠 지역이 지역을 벗어나야 한다
정진탄 논설위원


내년 총선 정국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는 사이 26일 부산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한중일 외교장관회의가 열렸다. 3개국 정상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전단계로 시기와 의제 등을 논의했다. 이번 3개국 외교장관회의를 맞은편, 그러니까 국토 동남부 행사를 국토 서남부에서 보는 필자는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이 같은 주요 국제정치 행사를 국토 서남부, 즉 광주·전남은 왜 열지 못하는 것일까 하며 인적·물적 자원의 열악함, 의지 부족을 개탄했다. 이런 문제의식이라도 갖고 있는 것일까, 아득함이 밀려왔다.

일주일 전 서울에서 만난 중견 언론인의 말은 실상을 말해준다. “광주와 전남은 전체적으로 무엇(지역발전 사업)을 해보려고 안 하더라. 국회의원을 포함한 지역 정치권과 공직사회가 너무 정보에 어둡고 수동적이더라.” 출향 인사로 유력 일간지에서 근무하는 이 언론인은 이러다가 광주, 호남권이 외로운 혹성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며 탄식하고 또 탄식했다. 디지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아직도 2000년대 이전의 전근대적 인식 버전을 사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마디로 지역 리더들이 너무 구태의연하더라는 것이었다.

지역 공직사회·지식인 인식

앞서 광주지역 대학 A교수와 점심을 같이 하며 들은 내용도 적이 놀랄 만했다. A교수는 “광주가 인구도 줄어들고 있고, 그냥 전국의 도시 중 하나, 잘해야 조금 큰 도시로 머무를 것이다. 주변인과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이분은 도시개발 학문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교수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별로 심각한 표정도 짓지 않고 광주 미래에 대해 이처럼 진단하는 것에 뭔가 대단히 잘못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A교수는 광주가 다른 광역시와 비교해 대중교통과 철도, 공항시설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또 관광 면에서 내세울 만한 게 없어 잘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다만 전라도의 음식 맛은 월등하기 때문에 이 자리는 쉽게 뺏기지 않을 것 같다고 위안삼아 말했다. 또 다른 대학 B교수와의 대화에선 광주 발전, 특히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산업 미래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견해를 피력해 우려한 적이 있다. 인문사회계열 전공자인 B교수는 척박한 기업 토양에서 AI 산업이 클 수 있겠느냐며 마뜩찮게 여겼다. 물론 미래 AI 산업의 필요성은 너무나 공감하지만 지역민 인식 및 호응, 정부 지원 여건을 고려해 볼 때 기대처럼 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언론인, 교수들의 시각과 주장에 대해 다른 일반시민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본다. 한데 지역사회 지도층의 인식이 일반시민과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더 비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선 못내 아쉬웠다. 이는 굉장한 함의가 있는데 지역 리더들이 비관적으로 미래를 진단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발전 장벽을 높게 형성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이들도 현실적인 인식을 토대로, 그러니까 광주에서 두발을 붙이고 살아보니 무엇인가 발목을 잡는 것이 뿌리박혀 있음을 알고 말하는 것이라고 보지만, 이런 인식이 지역 전체적으로 퍼져 작용한다면 광주라는 도시발전이 정말 만만한 것이 아니겠구나 하는 우려가 컸다. 지역이 발전하기 위해 무엇을 꾀하는 단계에서 비관적인 인식이 생각보다 더 깊고 넓게 자리하고 있다면 1년이 걸릴 지역발전 사업이 10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지역사회의 심리학적인 면과 관련해 외부세력이 폄훼에 나서더라도 내부에선 감정적인 반응을 넘어 확고한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하거늘 먼저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 매우 안타까웠다. 자기 부정의 심리학적 완고함을 타파하고, 이에 나서야 할 지식인 또는 정치권이 의도하거나 의도치 않거나 자기 발목을 잡는다는 것은 암울함을 준다.

지역이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 스스로 올바르게 정립된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정부가 다 알아서 해주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물론 정부가 챙겨줘야 할 것은 많이 있을 것으로 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스스로를 돕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의 큰 그림을 그려주면 세부적으로는 지역 스스로 부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력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내부 아이디어·실행 능력

수주 전 발표된 교육부의 글로컬대학 선정 공모사업 결과가 좋은 예다. 전남대와 순천대가 예비지정을 받았다가 최종지정에서 순천대만 성공하고 믿었던 전남대는 탈락 수모를 겪었다. 글로컬대학은 지역소멸 방지 차원에서 정부가 5년간 1,000억원을 지원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국립거점대학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던 전남대가 혁신안 평가에서 고배를 마신 것은 정부 탓이라기보다 지역 탓, 대학 탓이 크다.

항상 하는 얘기이지만 요는 아이디어이고 이를 볼 줄 아는 안목, 그리고 스스로의 실행 능력이다. 지역이라고 해서 아이디어를 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실행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얼마든지 스스로의 능력과 역량을 펼쳐 보일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차원을 달리하는 지방시대를 열 수 있다. 지역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스스로 지역이란 좁은 울타리를, 닫힌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 바깥세계와 마주하기 위한 자세가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