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녘의 후배 문인이 목련차라며 보내왔다. 내 목과 코가 좋지 못한 걸 알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목련꽃이 있을까 의아할 만큼 평상시 보던 목련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작은 꽃이다. 물을 끓여 찻잔에 꽃을 넣고 물을 부으니 금세 은은한 향과 함께 날아갈 듯 목련꽃이 나래를 활짝 펼친다.

나는 목련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짙은 향도 싫고 꽃이 진 모습은 너무 처참하고 보기 흉해서다. 동백꽃처럼 자존감을 지켜주었으면 싶은데 화려한 개화와는 다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낙화의 모습이 여간 못마땅했다.

요 몇 년에 여러 선배 문인들이 세상을 떠나셨다. 내겐 모두 동백꽃처럼 갑자기 뚝 떨어져 세상을 떠나신 것 같다. 나를 무척이나 아껴주셨던 서예가 수필가 예온 고임순 선생님, 형님처럼 자상하게 보듬어 주시던 민선 재선의 통영시장 고동주 수필가, 전주의 고하 최승범 교수님, 호탕한 웃음으로 늘 기분을 좋게 해주시던 김병권 선생님, 한결같이 따뜻한 손을 잡아주시던 이숙 선생님, 그리고 얼마 전 떠나신 범우 윤형두 회장님까지 모두 수필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수필을 위해 애쓰시던 분들이다. 그런데 가신 것이 하나같이 갑자기 떠나신 것처럼 느껴지니 삶의 무게를 더 이상 못 이겨 한 순간에 뚝 떨어지는 동백꽃만 같았다. 해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더 크다. 사실 목련꽃과 동백꽃이 다 땅에 지는 것인데 왜 둘이 달리 느껴질까. 아마도 목련은 철퍼덕 꽃 이파리를 펼쳐 떨어지고 동백은 앙다문 봉오리로 툭 떨어져서일까. 그것이 목련은 마치 나는 할 만큼 다 했으니 미련 없다며 떨어지는 것 같고 동백꽃은 아직은 아니라며 아쉬움을 품은 듯 한데 그게 오히려 품위롭게 보이는 것 같다. 둘 다 최선을 다한 모습이긴 한데 하나는 처참하게 하나는 안타깝게 보이니 사람의 눈이란 보는 것에도 마음이 실리는 것 같다. 그런데 꽃잎 차로 보내져 온 목련은 보기에도 앙증맞게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 작고 앙증맞음은 갓 태어난 순간의 내 첫 손녀 그 작은 손을 보던 것 같다.

목련꽃 차를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졌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더니 꽃잎을 낱낱이 따서 차를 만드는 법과 꽃을 통째로 차로 만드는 방법이 있었다. 내게 보내져 온 것은 꽃을 통째로 말린 것이다. 나는 핀 꽃이 어떻게 이리 작은 것이 있나 했더니 알고 보니 작은 꽃봉오리일 때 그걸 따서 그 속 꽃잎만 남긴 것이었다. 그러니 작은 꽃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손이 가고 정성이 들어가야 하니 차를 만드는 과정이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그런 정성을 기울인 꽃차를 마시는 호강을 이리 편하게 누린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고도 고마웠다.

꽃차는 눈과 코와 입으로 마신다고 했다. 그 고운 꽃을 먼저 눈으로 마시고 그 맑고 은은한 향을 코로 마시고 그런 다음 입으로 마셔서 차의 맛을 음미하는 삼 단계를 거치면서 세 번의 차를 마시는 것이 꽃차 마시는 법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이는 사람을 사귀는 것과도 같지 않은가.

사람도 처음 보면 눈으로 일차 평가를 한다. 첫인상이란 그래서 중요한 것이리라. 외모에서 풍겨오는 냄새(느낌)를 판단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선 몇 마디 인사말도 나누게 된다. 거기서 말투며 목소리 등으로 2차 판단을 한다. 그리고 악수를 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내면까지를 파악코자 한다. 손으로 전해지는 따스함의 정도, 차를 나누면서 전해져 오는 품격과 분위기 등이 차의 맛을 음미하는 단계쯤으로 보면 될 것 같다. 해서 옛 어른들은 상대를 보다 깊이 알기 위해서 차를 마시고도 바둑을 두거나 시를 나누거나 했던 것 같다.

목련의 꽃말은 가장 우아한 사랑, 존경, 숭고한 정신, 우애 등으로 우아하고 고귀함을 말한다. 하지만 백목련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고 자목련은 믿음이란다. 목련은 백악기로부터 현재까지 사는 가장 오래된 꽃식물 중 하나라고 한다. 말하자면 태초의 꽃인데도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다. 목련은 목필(木筆)이라고도 하는데 꽃술이 마치 붓을 닮았다 해서이고, 북향화(北向花)라고도 하는데 이는 꽃봉이 필 때 남쪽 꽃잎이 햇빛을 더 많이 받아 서 성장이 빨라 성장이 늦은 북쪽으로 굽어 꽃을 피우기 때문이란다. 사실 목련은 너무 짧은 기간에 피었다 져버리는 기품 있고 우아한 꽃이다.

진달래꽃을 따서 먹거나 삐비꽃을 뽑아 먹거나 했던 어린 날엔 그저 배가 고파서 먹던 꽃을 이렇게 품위 있게 우아하게 차로 마시려니 왠지 어린 날이 미안해진다. 하지만 남녘 후배의 정성과 사랑을 마신다고 생각하니 차 맛이 더욱 향기롭다. 목련향이 내 부실한 온몸에도 건강한 기운을 채워주는 것 같아 한껏 행복에 흠뻑 젖는다. 보내온 사랑 가득 나도 우아하게 목련차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