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60년도 전이었으니 그땐 껌이란 것을 구경하기도 참 어려웠던 시절이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어디서 구하셨는지 껌 한 통을 주셨다. 나는 그것을 식구들과 나누고, 내 몫의 한 개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여럿 내게로 모여들었다. 나는 보란 듯이 껌을 내보이고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에게만 반을 뚝 잘라 준 다음, 남은 반을 한입에 넣고는 보란 듯 씹기 시작했다.

주위의 아이들 눈빛이 달라지고 안색들이 변했다. 그러나 나는 한껏 우월감으로 자랑스럽게 껌을 씹었다. 그런데 껌 반쪽을 받은 내 친구는 그걸 들고 한참을 망설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집으로 가져가 제 누이와 어머니랑 같이 나누고 싶은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는 내 예상과는 달리 주위의 아이들을 한 번 빙 둘러보더니 껌을 아주 조금씩 떼어서 모두에게 나눠 주었다.

손에 받을 수도 없을 만큼 작은, 입에 넣어도 무엇을 넣었는지조차 모를 아주 작은 크기로 껌을 떼어 모두에게 나눠 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손에도 잡히지 않을 작은 그것을 받고 너무나도 좋아하며 환한 얼굴 가득 소중하게 그 껌을 입에 넣었다.

나는 그날의 부끄러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준 껌 반쪽을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큰 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너무 부끄러웠다. 갑자기 나보다 열 배는 더 커 보이는 그 친구가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그 친구를 향하던 아이들의 눈길과 나를 향하던 아이들의 눈길은 분명 빛이 달랐다. 그리고 친구를 감싸고 있는 정확히는 표현할 수 없는 부드러움과 훈훈함의 분위기 그리고 덩그마니 서 있는 내게로 감겨오던 냉기 같은 싸늘한 분위기는 어린 내가 느끼고 보기에도 확연히 달랐다.

나누는 만큼 더 커진다는 것을 그때 나는 알았다. 나누면 나눌수록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눈 만큼씩 더 커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친구의 눈에서 넘쳐나던 아침 이슬보다도 더 맑은 사랑의 빛도 보았다. 어쩌면 그 친구는 마지막 남은 아주 작은 자기의 몫까지도 못 받은 누가 있다면 서슴없이 주고 말았을 것이다.

요즘처럼 각박한 시대에도 그 친구만 생각하면 밝아오는 아침처럼 마음이 맑아진다. 그때 바로 부산인가로 이사를 가버려 그의 소식이 끊기고 말았지만 그는 분명 살아만 있다면 여전히 어디에선가 결코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기 몫 이상의 일을 해내며, 많은 사람을 위해 살고 있을 것이다.

요즘 세상은 따뜻함도 부드러움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만큼이나마 세상이 얼어죽을 만큼 차갑지는 않은 것은 보이지 않게 소리 나지 않게 어디선가 묵묵히 세상을 쓸고 닦고 빛나게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주 어둠으로 묻혀버리지 않는 것이리라.

문득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 있는 또 한 친구, 월급날이면 동전을 잔뜩 바꿔다 놓고 출근길이면 한 줌씩 주머니에 넣고 나가서 지하철 입구나 거리에서 손을 내미는 사람들에게 손에 잡히는 대로 주곤 하던 그가 생각난다. 월급이 안 나오는 달에도 그러면 나는 미운 소리를 했는데 그런데도 자기는 다음에 나올 구멍이라도 있지 않느냐면서 어떤 날은 아껴가며 나눠주다 동전이 남아버렸다고 안타까워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쩌면 세상은 그와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있기에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중한 만큼 남도 중하다는 걸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자기를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일 것이다. 하니 미래에 대한 소망,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 그렇게 해서 이뤄내는 기쁨,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라도 잃지 않아야 할 텐데 그조차 어려운 가엾은(?) 나를 본다. 그래도 어디선가 빛을 밝히고 향기를 내는 누군가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그나마 행복한 미래를 소망하고 예감한다. 세상에서 제일 큰 껌을 나누던 그 친구는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아직도 가끔은 그가 나누던 세상에서 가장 큰 껌을 생각하며, 그걸 받고 즐거워하던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 삶을 돌아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