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등골 굽이굽이 유순하게 흘러내리는 황룡강. 꽤 많은 세월 동안 친정 나들이를 할 때마다 설렘으로, 또는 애틋함으로 건너곤 하던 강이다. 여자에게 있어 친정 나들잇길에 만나는 것은 들판의 허수아비도 반가운 법이라는데 하물며 미려한 강산이라니 말해 무엇하리.

송정동 영광통에서 운수동을 지나 서봉마을 앞쯤에 이르면 송산교를 중심으로 한 폭의 수채화가 펼쳐진다. 좌측 하류에는 복룡산을 베개 삼아 용강골이 누워있고, 우측 상류로 접어들면 섬으로 이루어진 황룡강의 명소 송산유원지에 다다른다.

초여름의 강은 늘 변함없는 시선으로 넉넉하게 유영하고 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물살의 의연함은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오래전부터 용강골을 바라보면 어린 시절 숨바꼭질을 하다 숨어버린 친구를 꼭 그곳에 가면 찾을 것만 같은 환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흐드러진 아카시아 향기에 취해 포플러, 찔레꽃, 소나무 숲을 꿈결인 양 걸어 본다. 강 건너 도시 쪽에서는 문명의 소리가 요란하건만 이곳은 아랑곳하지 않고 태초의 신비 그대로이다.

울울창창한 숲의 터널을 뚫고 오자치 장군과 그 애마(愛馬)에 얽힌 전설의 흔적을 찾아 용마바위로 발길을 옮기는데, 마음은 이미 용마를 타고 단숨에 복룡산과 어등산을 넘나든다. 믿었던 주인에게 버림받은 통탄함 때문일까. 영원히 일어설 수 없는 용마는 먼 하늘만을 황망하게 응시하고 있다.

세월의 이야기는 용마바위 옆 밭 언덕에서도 들려왔다. 20여 기는 됨직한 고인돌들이 몸 곳곳에 채흔을 간직한 채 아귀다툼으로 이 강변의 역사를 들려준다. 강은 물뿐만이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도, 유구한 전설도 함께 실어 나르고 있다.

귓전에 감도는 여운을 강물에 띄워 보내고 송산유원지를 향해 돌아 나오는 길섶에는 여기저기 산딸기가 붉게 익어 가고 있다. 용진산 옆 자락을 휘감아 흐르던 황룡강이 어등의 넓은 등 뒤에서 잠시 쉬어 가는 송산유원지. 섬의 대부분을 덮고 있는 플라타너스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손만 넣으면 잡힐 것 같은 송사리와 피라미들이 잽싼 몸놀림과 함께 은빛 비늘을 반짝인다. 붉게 핀 해당화 울타리가 둘러쳐진 넓은 잔디 구장에는 야외 공연장, 축구장 등이 갖추어져 있고, 아담한 연못 속에는 비단잉어와 수련이 조화를 이루며 숨바꼭질 중이다. 창포, 부들, 물옥잠, 바늘사초 등 이름도 정겨운 식물들이 수줍게 얼굴을 내민다.

넓고 시원한 공간과 수려한 경관을 보니 습관처럼 내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놀 곳도, 갈 곳도 없이 지쳐있는 요즘 우리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저 세월의 흔적만을 실어 나르는 황룡강이 아니라 진정 함께 흐르고 싶다는 일렁임의 작용에서였을까.

조심조심 강둑을 내려가 맑은 물에 두 손을 담갔다. 순간, 말이 없던 강물이 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듯 귓전에 쉼 없이 속살거린다.

‘모든 삶은 역행하지 않고 순리대로 흐르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