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집 장군이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5월 초순부터 슬금슬금 털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온 몸뚱이가 들쑥날쑥 마치 비루먹은 망아지 꼴이다. 혹시나 하는 걱정에 찾아본 자료들에 의하면 진돗개 종류는 봄, 가을로 털갈이를 하며 성견(成犬)으로 접어드는 생후 1년 가까이에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유순하고 낙천적이어서 잘 먹고 자던 놈인데 유독 까칠하게 구는 모양이 정신적으로도 안정된 상태가 아닌 듯하다. 그런 장군이를 보살피다 보면 내가 겪었던 아픔이 오롯이 되살아나곤 한다.

육십 문턱을 넘던 봄은 왜 그렇게 힘이 들었을까. 살아온 나날들이 모두 한 덩이가 되어 덮치는 것만 같았다. 심신이 편한 곳이 없었다. 아침이면 버릇처럼 나가 정신을 가다듬으며 강의를 하곤 했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누워 지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것은 전초 증상일 뿐, 점점 탈모까지 진행되었다. 머리만 빗으면 한 움큼씩 빠져나와 두피가 훤히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부분 가발에, 모자에 수단과 방법을 다했지만 상실감과 우울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겨내야만 했다. 되도록 마음을 편안하게 다잡으며 탈모에 좋다는 비방들에 열심히 따랐다. 가족들도 큰 힘이 되어주었다. 어느 날, 기적처럼 듬성듬성 머리털이 나기 시작했다. 그 기쁨은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게 했다.

이심전심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장군이와 나의 탈모는 같은 현상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장군이가 사춘기 성장통의 과정이라면 내 경우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노화현상의 순리가 아니겠는가. 어쩌면 크게 건강의 적신호가 올 것을 예고해 삶의 재정비 시간을 갖게 했다는 생각도 든다.

‘솔개’라는 새의 우화가 종종 머릿속에 맴돌곤 한다. 솔개는 70년을 사는 장수 새로 알려졌지만 40살 정도에 신중하고도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한다. 그때가 되면 부리와 발톱이 굳어져서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게 된다. 날개 역시 깃털들이 두꺼워져 날아다니는 것조차 어렵다. 이때 솔개는 산꼭대기 절벽 끝에 둥지를 틀고 긴 시간 동안 부리가 없어질 때까지 바위에 대고 친다. 새로운 부리가 날 때까지 다시 오랜 시간을 기다린 후에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또다시 발톱이 자라나면 이제는 낡은 깃털을 뽑아낸다. 그렇게 기나긴 고난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새로운 비행이 시작되며 생명을 30여 년 연장할 수 있게 된다.

우화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만들어 낸 이야기 속에는 사람이 공감하며 적용할 수 있는 현실이 담겨 있다. 분명 내게 찾아온 탈모의 경고는 남은 삶을 위해 거듭나기의 기회로 삼으라는 계시인 것이 확실하다.

성장기의 정체성 때문에 갈팡질팡 헤매는 청소년을 보듬어 안고 다독이는 마음으로 가만히 장군이에게 속삭여 본다. 그보다 스스로 주문을 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지금의 위기를 현명하게 견뎌내도록 하자. 그리고 한층 거듭나기 위해 애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