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밖으로 나온 악어.’

지난 연말 12·3 계엄 이후 이른바 ‘실패한 세력’들의 모습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TV 인기프로그램 ‘동물의 왕국’ 한 장면. 물 밖에서 악어 한마리가 어슬렁거린다. 느린 걸음 탓에 무섭게 보이지 않는다. 휴식을 취하던 찰나 사자나 들소떼가 덤벼들면 꽁무니 빠지게 달아난다. ‘걸음아 날 살려라’ 화들짝 놀라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에 시청자들의 웃음보가 터진다.

그랬던 악어를 물속에서 사냥하는 모습을 본다면 웃음이 나올까. 먹잇감을 발견한 악어가 눈을 부라리며 접근한다. 잔물결 한가닥도 일지 않는다. 다가간 순간 솟구쳐 오르며 일격에 목을 물고 물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찰나의 순간이다. 물 속에서 악어의 행동은 거칠 게 없어보인다. ‘몸통 돌리기’라는 ‘뒤집기’ 기술을 선보인다. 먹잇감은 금방 반토막으로 잘린다. 토막 채 넙죽넙죽 삼킨다. 악어의 사냥 장면엔 늘 소름돋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유다.



전두환도 못한 최초 군대 국회 난입



12·3 계엄이 실패로 끝났으니 망정이지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물밖의 악어’가 아닌 악마같은 ‘물속의 악어떼’에 고통을 받으며 짓밟혔을 건 자명하다. 전두환 일당의 1980년 5월 비상계엄의 공포가 45년만에 다시 현실이 돼 우리 앞에 나타날 줄이야.

비상계엄이 석달째 지나고 있는데도 여전히 불편함이 자리하고 있다. 집단 감정인 ‘계엄 우울증’이다. 탄핵재판에서 변명으로 일관하는 피의자들의 민낯에 무기력증을 느낀다는 대중들이 늘고 있다. 성서를 읽기 위해, 불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쳤다고 해도 정당화 될수 없는 법이다. 법률가 출신으로 헌법을 짓밟고 형법의 조항과 조문을 위반하면서까지 나라를 구하겠다는 발상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망동이라 하겠다.

대한민국 군대가 국회에 쳐들어간 건 이번이 최초다. 국민 계몽을 위해 국회에 진입했다는 말을 이해하는 국민 몇이나 될까. 이렇게 처참하게 국군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린 국군통수권자가 있었을까. 전두환도 80년 국회를 봉쇄한 적은 있지만 국회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 일 때문에 전두환이 내란수괴로 처벌 받았다는 점 기억해야 한다. “계엄령을 내렸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내뱉는 저들의 행태는 무시무시한 사건이자 소름돋게 하는 일이다.

남부끄러운 듣기평가도 고통이다. ‘계몽령’이라느니 ‘의원’이 아니고‘요원’ 이었다는 억지에는‘바이든 날리면’ 2탄이 떠오른다.

토인비(1889~1975)는 ‘역사의 연구’에서 ‘역사적 성공의 절반은 죽을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고, 역사적 실패의 절반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에서부터 비롯됐다’고 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누군가에 권력을 줄 때엔 권력을 남용할수 없도록 한 뒤 넘겨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함부로 권력을 잡으려는 행동은 용납될 수없다는 의미다. 위정자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최근 어느 지역민이 계엄 직후 전방지역 군부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몇가지 묻더니 ‘잘못 건 전화였다’고 끊었다고 한다. 등골이 오싹했다고 했다. “계엄이 성공 했더라면 ‘수거 대상’으로 분류돼 지하 벙커에 갇혔을 것”이라고 함께 웃어 넘겼지만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았으리라.



새로운 시대 구체적 콘텐츠 고민할 때



‘난세’다. 군홧발로 국회를 짓밟고, 법원 난입 사태를 벌여 놓고도 반성하는 자들이 없다. 좌우·여야가 극단으로 치달을 뿐 논의의 장도,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는 정치인도 보이지 않는다. “내 잘못이요” “사죄합니다” “생각이 짧았다. 국민의 너그러운 용서와 처분 바란다”고 용기를 낼 순 없을까. 모른다, 기억 안난다, 달그림자 타령만 주절거린다. 극우 유튜버들의 악담도 갈수록 가관이다. 탄핵반대 여론이 오르자 쾌재를 부르고 있는 듯하다. ‘금방 잊어 버리는’ 국민성에 기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반성없는 그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지쳐만 가고 있다.

TV를 보던 어떤 분의 말이 글줄 깨나 읽었다는 유식한 학자들보다 울림을 준다.

“법이 어떻고 국민이 어떻고 지껄이는, 법대 나왔다는 엘리트들 이번 사태를 겪고 나니 부러움이 싹 사라졌다. 깜냥도 안되는 인간들, 정치한답시고 거들먹거리는 자들 제발 앞으로는 안봤으면 좋겠다”

시절이 하수상 하지만 절망하지는 말아야 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지 않던가.

벚꽃이나 장미꽃 필무렵 조기대선을 치른 뒤 우리 사회 전반을 재정비 하는 대수술에 나서야 한다. 새로운 시대로 나가려면 어떤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인 지 구체적인 콘텐츠를 고민해야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껍데기’들을 쓸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시대를 되돌리려는 자들에게 시인 신동엽(1930-1969)의 시를 들려주고 싶다.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아사달 아사녀가/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