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한반도미래연구원장

5·18 단체들이 특전사동지회와 함께 5·18묘역을 참배하고 ‘화해와 용서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것을 놓고 지역사회가 시끄럽다.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사과·용서·화해의 개념과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 등에서 비롯된 갈등과 충돌이라고 본다.

필자는 3년 전 정부 차원의 5·18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했을 때 위원회가 특별히 새로운 것을 밝혀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 이유는 5·18 진상규명은 이미 8부 능선을 넘어섰고, 나머지 내용 대부분은 1980년 5월 당시 군 지휘부와 학살에 관여한 당사자들의 협조 없이는 밝혀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임자 처벌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1996년 대법원에서 전두환은 무기징역, 노태우는 징역 17년, 황영시는 징역 8년, 이희성과 정호영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980년 5·18 당시 군을 이끌었던 주요 책임자들 모두 중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전두환과 노태우 등이 사면·복권을 받았다고 해서 이런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사면·복권 사실보다는 그들의 범죄 사실과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받은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5·18을 서술할 것이다.

5·18에 관한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용서는 완전한 진실규명과 처벌,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고 난 뒤 가능하다는 주장은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그런 주장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논쟁만큼 어려운 주제이다. 진실규명과 5·18 폄훼 세력에 대한 감시는 지금처럼 계속하되, 향후 오월 운동의 방향은 미래에 더 방점을 두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을 포함한 전국화와 문화 예술적 승화, 세계화 등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전사동지회의 묘역 참배 과정과 ‘화해와 용서의 공동선언문’ 내용에 아쉬운 점이 많았다. 공동선언문 내용 중에 ‘상부의 명령에 따라 공적 임무를 수행한’이라는 문구는 당시 상황에 대한 표현으로서 너무 안이했다. 또 과잉진압 행위를 자행하여 수천 명의 사상자를 발생하게 만든 현장의 주역들에 대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주장한 것도 안이한 역사 인식의 발로였다. 공동선언문 발표 현장에서 최익봉 특전사동지회장이 행한 인사말은 더욱 문제가 많았다.

반면에 긍정적인 요소들도 있었다. 43년 전 학살의 중심 부대였던 특전사 출신들이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고 나선 것, 행사 후 특전사동지회가 자신들의 홈피를 정비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거나 왜곡하는 글들을 모두 정리하기로 한 것 등은 잘한 일이다. 앞으로 특전사동지회가 북한군 침투설 같은 허무맹랑한 주장을 반박하는 등 5·18 진상규명에 협력한다면 그 파급 영향은 클 것이다.

지금 행사를 추진한 측과 이를 비판하는 측이 정면 대립하고 있다. 이 문제를 푸는 방식이 꼭 이래야만 되는 것일까? 제3, 제4의 의견과 방식은 없는 것일까? 예를 들면 행사를 추진한 5월 단체는 공동선언문의 내용과 진행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시민들에게 사과를 하면 어떨까? 대신 광주시민들은 행사를 추진한 5월 단체에 특전사전우회와 계속 소통해 과거사에 대한 좀 더 진솔한 반성을 이끌어내도록 시간과 임무를 주는 것이다.

공동선언문 내용을 수정·보완하는 것도 문제를 푸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정·보완한다면 이런 식으로 해보면 어떨까?

“특전사 요원들이 1980년 광주에서 시위대 진압의 임무를 수행한 것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하에 있었던 군인 신분으로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임무 수행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과잉진압 행위가 있었고, 이로 인해 많은 시민이 희생을 당했다. 이 점에 대해 선배들을 대신하여 5월 영령과 광주시민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또 과거사에 대한 반성적 차원에서 향후 진실규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 다른 한편으로 호소드린다. 우리 선배들 대부분은 일부 정치군인들의 잘못된 명령의 피해자들이었다. 정신적·육체적으로 많은 아픔을 겪었다. 그들이 치유, 보상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민주사회에서 소수 의견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했다. 5·18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논의 주제에 가능한 한 성역을 없애고, 제3, 제4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는 토론문화가 조성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