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매광장>저출산의 늪을 바라보며
박문옥 전남도의원(안전건설소방위원회)


2000년 초 주식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2년이라는 짧은 투자는 이후 수년간 경제적 짐으로 다가왔고, 당시 큰 비용을 지불한 덕에 아직도 주식을 가까이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당시의 나는 객관적 그래프를 믿지 않고, 단지 감각에 의존하려 한 어리석은 개미로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추세선이 보여주는 매수와 매도 타이밍을 애써 외면하고 나 자신이 보고싶었던 가상의 추세선을 상상하며 그리지는 않았을까?

지난해 전남도의회 도정질문 과정에서 전남도 출산율 추세선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2015년 이후 매년 전년 대비 일정비율로 하락하는 그래프를 띄워놓고 22년 전남의 출생아수는 7,000명대 후반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었는데, 얼마전 발표한 통계청 자료를 보니 안타깝게도 그 예상이 딱 들어맞았다.

노후연금 부담 등 현실화

인구문제, 특히 출산과 관련한 수치를 들여다 보면 추세선의 방향이 나쁘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데, 왜 정부는 늘 소극적이고 근본적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것인지, 이전의 나처럼 희망만 바라보는 건 아닐까?

22년도 합계출산율 0.78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나라가 유지되기 위한 수치의 약 3분의 1, 그리고 수십년 후 미래세대 1명이 책임져야 할 부양자가 이제는 2.5명을 넘어섰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소멸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앞으로 닥쳐올 복지재정 및 노후연금에 대한 부담, 나의 노후와 내 자식이 짊어져야할 부양에 대한 압박이 이제는 현실로 다가왔다.

몇 년 전 ‘출산은 아이에게 못할 짓’이라는 자극적 문구가 실린 기사를 본적이 있다. 부양의 책임은 다하지만, 오히려 노후연금 고갈 등으로 자신의 미래는 보장받지 못할 상황이 예견돼 있는데 누가 아이를 낳으려 하겠냐는 내용이었다. 과연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생각은 이 기사의 내용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

2006년 이후 지난해까지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약 380조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수치는 악화되고만 있다. 2000년의 시작과 함께 전 세계 각국이 겪었던 저출산의 늪에서 유독 대한민국만 벗어나지 못하고 깊이 빠져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제대로 된 원인을 찾기 위해 정부는 얼마나 노력했을까?

지방의원이 바라보는 정부와 국회의 저출산 대응 정책을 보면서 떠오르는 단어는 ‘실망’이다. 모든 부처에 분산돼 있는 수십조 원의 관련 예산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연관되는 사업 조차도 저출산 극복이라는 꼬리표를 붙여가며 숫자만 카운팅하는 모습, 자기 업무를 지키기 위해 업무협조도 제대로 하지 않은 행정을 보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국가의 생존이 위협받는 현 상황을 보면서 인구전담 부처를 신설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도 주문하였지만 정부의 반응은 ‘침묵’ 그 자체이다.

이제 20년을 넘기고 있는 지자체의 출산 장려금 정책은 정부책임을 외면한 대표적 사례이다.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지방소멸을 우려해 기초자치단체에서 시작한 출산 장려정책은 어느새 지방의 고유업무가 되었고, 부족한 지방세수는 자치단체 간 생존 경쟁의 수단으로 사용된지 오래이다. 아이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결국은 지방을 떠나게 되지만, 이러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은 과연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가?

지자체의 각자도생식 인구빼가기 경쟁은 외면하고, 지역에 대한 투자는 예비타당성조사라는 그림자 뒤에 숨어서 수도권과의 차별을 부추기지는 않았는지, 선거와 지지율 등을 의식해서 근본적인 처방은 무시해 왔던건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저출산 추세선’ 생존 문제

전문가들은 서울시의 합계출산율이 5년후 전국출산율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22년 0.78이라는 전국 합계출산율은 이미 5년전 서울시를 보며 예측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선행지표를 바라보며, 정부와 정치권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표가 보내주는 시그널을 인식하지 않고 근거 없는 희망만 꿈꾸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된다.

저출산을 극복한 해외의 사례를 더 꼼꼼하게 연구하여 우리에게 맞는 저출산 대책을 이제는 내 놓아야 한다.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대한민국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저출산 추세선을 꺾는 일, 이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