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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와 부조리 기억 후대까지 두드리다
디아스포라 작가전 김석출 '두드리는 기억'
5월 26일까지 하정웅미술관

2024. 02.28. 19:28:53

김석출 작가가 작품 ‘되돌아보는 유관순’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저는 재일과 민족을 둘러싼 불의와 부조리에 반응하며 이를 기록으로 남겨 기억을 소생시켜 나가고자 했습니다. 그 기억의 지속적인 두드림은 많은 이에게 공유돼 후대에 역사가 되길 바랍니다.”

일본에서 재일의 인권문제와 조국의 안녕을 기원하는 작품을 그려온 김석출 작가(74)가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오는 5월 26일까지 하정웅미술관에서 열리는 하정웅미술관 디아스포라작가전 ‘김석출-두드리는 기억’이다.

재일 디아스포라 (재일동포)인 김 작가의 시대별 가족사에는 재일동포의 역사가 보인다. 그의 가족사에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남북분단에서 발생한 비애 등 역사의 혼란 속에서 겪은 억압과 차별을 느낄 수 있다.

김 작가는 이런 개인사에 뿌리를 두고 작업을 이어왔다. 재일의 인권과 역사, 조국의 정치와 사회이슈, 조국의 화합과 통일, 한일 교류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시는 김 작가의 작품 주제를 ‘재일디아스포라, 김석출의 생애’, ‘미술에 입문과 재일의 인권’, ‘광주의 기억’, ‘되돌아보는 유관순’, ‘과거와 현재를 잇다’ 등 시대별로 구성, 10대 후반에서부터 최근작까지 60여 년 동안의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재일 인권과 민족교육 문제 등을 다룬 초기작품과 5·18 시리즈, 3·1운동 열사 ‘유관순’ 연작, 조국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최근작까지 작품 105점과 아카이브 자료 100점을 전시하고 있다.

10대 시절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자화상시리즈’를 시작으로 전시는 시작된다. 작품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출발점으로 그린 그림들이다.

1949년 일본 기후현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일제강점기 시기 부모가 일본의 징용공으로 차출되면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게 됐다.

김 작가는 재일동포로서 겪는 차별과 재일의 인권, 민족교육, 북송선 문제, 베트남 전쟁과 조국의 정치 상황 등 사회적 이슈를 주로 다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한 뒤에는 20여 년간 5월 광주 시리즈를 제작했다. 5·18 전시를 보기 전 1980년 일본 언론에서 다룬 1980 5·18 보도 스크랩 아카이브를 둘러보는 것이 좋다. 국내의 언론통제 상황과 달리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간 중 일본에서는 TV나 신문 보도를 통해 매일의 상황이 즉각적으로 보도됐다.

신문 스크랩은 기자 출신 가와세 ?지가 한 달간 수집한 자료들이다.

당시 일본 언론을 통해 5·18 소식을 접한 김 작가는 그 누구보다 마음 아파했고 예술가로서 역할과 사명감을 각성하게 됐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20여 번의 수정을 거쳐 완성한 ‘1980.5.27’은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청년들을 그린 작품이다.

여느 민중작품에서 보여졌던 거친 느낌과는 달리 부드럽게 느껴진다. 화면 중앙에 있는 남성은 손목이 묶여 끌려가고 있지만, 인체의 비율이나 근육 등이 부드럽게 표현돼 있다.

죽어가는 남자를 끌어안은 여자의 모습을 그린 ‘1980.5.18 광주’는 블라인드 처리된 화면 속에 죽어가는 남자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에서 궁금증을 일으킨다. 그림에 등장한 블라인드는 재일동포의 심리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민족임에도 재일이라는 다른 공간에서 어찌할 수 없는 조국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과 상황을 묘사했다. 그림을 유심히 보면 흩날리는 치마저고리와 널브러진 한국의 전통 탈들이 배치돼 있다.

작가는 5·18을 결단에 의한 저항이자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 이를 통해 한국 민주화의 희망을 담고자 했다.

같은 5·18 시리즈이지만 재료와 기법이 다르게 적용된 작품도 만날 수 있었다. ‘1980. 5월 27일 수난’이 대표적이다. 규조토와 모래를 섞어 사용해 화면의 재질감을 강조한 작품은 추상화 같다. 그림을 유심히 보면 총알이 뚫고 지나간 흔적과 속도감, 나사못이 파고 들어간 듯한 굴곡 등이 인상 깊다.

비슷한 시기 작가는 고려미술회를 창립해 이념을 떠나 재일작가라는 이유로 전시장을 구할 수조차 없는 이들에게 작품 발표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재일작가를 육성하는 데도 힘썼다. 특정 단체의 지원 없이 회원 자력으로 단체를 18년 동안 운영하며 재일미술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등 고려미술회가 재일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2000년대 들어서는 ‘유관순’ 연작 등 민족 역사를 기억하는 작업을 해나가는 한편 동화책 원화 등을 통해 재일 3세·4세 등 후대가 우리 민족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작품을 이어가고 조국의 통일과 화합을 기원하는 작품 등을 작업하고 있다.

김 작가는 “모든 재일동포가 그렇듯 저 또한 나의 나라, 나의 조국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면서 “고민할 때도 있었지만 어디서 사는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빨리 통일이 이뤄지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재일 동포의 차별도 없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 진행된다.



/글·사진=이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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