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위기다. 발등의 불이 됐고, 경고음은 더욱 가팔라졌다. 아이 울음소리는 끊겼고, 청년이 떠난 자리엔 노인들만 남았다. 산부인과, 소아과병원이 난 자리에 들어선 요양원, 철문을 내린 채 잡초만이 무성한 학교도 더는 낯설지 않다. 허리띠를 조르고 졸라 지원금을 풀어도 그때뿐 허사다. 짙게 드리운 ‘지역소멸’의 그림자들이다.

빠르게 재깍이는 지역소멸의 시계는 이미 국가적 화두다. 브레이크 없는 저출산과 인구감소, 수년째 이어지는 데드크로스,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 등이 얽히고설킨 탓이다. 당장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 수준인 0.7명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 지난해 말 기준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 격차는 70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70대 이상 인구도 사상 처음으로 20대 인구를 넘어섰다. 이에 대통령은 저출생을 국가비상사태로 진단하고, 교육·노동·복지를 아우르는 ‘인구전략기획부’와 대통령실 내 전담 조직인 ‘저출생수석실’ 설치를 지시했다.

전남의 상황은 더더욱 다급하다. 각종 지표들은 암담하기 그지없다.

1990년대 250만명이던 인구는 2010년 191만명으로 200만 고지가 무너졌고, 올 들어선 지난 3월 말 180만명 선마저 깨졌다. 2037년에는 170만도 붕괴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2022년 인구감소 예측조사를 통해 곡성·구례·고흥·보성·장흥·강진·해남·영암·함평·영광·완도·진도·신안 등 도내 13곳을 ‘소멸위기’ 지역으로 분류했고, 행정안전부는 담양·장성·화순까지 더해 16곳을 인구감소 지역으로 지정한 상태다.

교육과 일자리를 찾아 농어촌을 떠나는 젊은층이 크게 늘면서 전남 청년인구는 최근 5년 새 60만명에서 52만명으로 급감했다. 50만명대도 위태위태하다. 청년층이 떠나면서 고령인구 점유율은 그만큼 높아졌다. 전남의 65세 이상 고령층 비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25.2%에 이른다. 도내 인구 4명 중 1명 꼴이다.

저출산 등 여파로 문을 닫는 학교도 속출하고 있다. 전남에서 지난 2019년부터 5년간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한 초등학교만 21곳에 이른다. 올해도 본교 1곳과 분교 4곳 등 5개 초교가 문을 닫았다. 초교 병설 유치원 역시 올해만 9곳이 문을 닫았다.

지역소멸의 시계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전남도를 필두로 도내 지자체들마다 ‘소멸의 파고’를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남도는 올해를 ‘지방소멸 위기극복 원년’으로 삼고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도는 광역지자체 처음으로 인구와 청년, 이주민 정책을 전담하는 인구청년이민국을 신설했고, 전남형 만원주택, 318 출생수당 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국립 의과대학과 특별자치도 설립을 비롯해 출입국·이민관리청(이민청) 유치, 농산어촌 유학, 공공산후조리원 확대 등 전남형 인구·주거·일자리·복지 프로젝트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강진군은 빈집을 리모델링해 월 1만원에 임대하는 사업을 통해 도시민들을 끌어들이고 있고, 화순군의 ‘만원 임대주택’도 히트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완도군은 해양기후·경관, 해조류 등 지역특화 해양자원을 활용한 ‘해양치유’를 통해 해법을 찾고 있다. 고흥군 역시 16개 읍면별 ‘1읍면 1특수시책’을 통해 ‘2030 고흥인구 10만 달성’ 프로젝트에 속도를 내고 있고, 신안군은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햇빛연금’으로 지역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전남연구원 김대성 사회문화연구실장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전남도와 22개 시군의 다양한 인구 브랜드 시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선 주민들의 공감대와 지속·일관성이 담보돼야 하고, 대학, 혁신기구들과 연계 협력도 전제돼야 한다”며 “무엇보다 정부가 사회보장제도 신설 변경 협의라는 단서를 통해 새로운 제도에 대한 제약 일변도에서 벗어나 출생, 인구문제에 특화한 지자체 시책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