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 피해자의 상처를 어루만질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 치유센터가 지난 1일 개관했다.

센터는 5·18민주화운동, 여순사건, 부마항쟁,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등 국가폭력 피해자에게 정신·신체·사회적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치유 모델 정립에 앞장 설 방침이다.

차호준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초대 원장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전국에 분포된 국가폭력 피해자 수는 피해당사자 144만명, 광의의 피해자 442만명, 생존추정 150만명, 파악 피해자 9만명, 국립센터 설립 이후 3년 이내에 치유를 요구할 잠재적 내담자는 1만5,834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세워 시기별로 적절한 치유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사회가 공감하고 연대하는 치유모델 정립에도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 초대원장 취임 소감은.

△센터는 국가폭력 피해자 트라우마 치유를 국가가 책임지는 안정적인 기관이므로, 피해자들이 센터를 적극적으로 찾아주시길 바란다.

이에 맞춰 센터도 몇 년 이내에 대폭적으로 증가할 회원들을 치유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단기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현안만을 쫓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먼 미래에도 센터가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의 쉼터가 되고, 국가 설립 기관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는 국민적 지지를 받도록 직원들과 함께 노력하겠다.

나아가 선진적인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표준화된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 프로세스를 구축해 센터가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의 국제적 허브가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다.



-센터 설립 의미는 무엇인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로 한정하면 국가폭력 피해당사자 144만명, 광의의 피해자 442만명, 생존추정 150만명, 파악 피해자 9만명, 국립센터 설립 이후 3년 이내에 치유를 요구할 잠재적 내담자는 1만5,834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할 국가가 오히려 불법적으로 폭력을 가한 지난 정권들의 과오를 스스로 인정하고 그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치유하기 시작한다는데 센터 설립의 의미가 있다.

광주시가 국내 최초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기관인 광주트라우마센터를 12년간 시범사업으로 운영해왔지만 운영상의 한계로 언제든 종결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대다수 피해자들은 광주센터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마음 한구석 불안감을 안고 참여를 주저한 측면도 있었다. 일부 피해자들은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이용만하고 아무런 치유도 해 주지 않을 거라며 광주트라우마센터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했다.

새로 출범한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는 국가가 운영주체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어 피해자들이 불안감 없이 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치유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폭력 트라우마 진단체계를 확립하고 적절한 처방을 제공도록 노력하겠다.



-예산이 충분하지 않아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이는데. 향후 대응 방안은.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조성방안연구 결과보고서에서는 센터 인력은 61명, 예산은 연간 61억원이 적정하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올해 확보된 예산은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시설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범위 내에서 출연 또는 보조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어, 국립임에도 예산의 일부는 재정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것으로 출발한점이 예산부족의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전반적인 국가폭력 트라우마를 조사·연구하고, 진단·처방·치유·평가 프로세스를 구축해야함에도 예산 부족으로 현재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역량을 갖춘 치유 전문인력들 역시 적정 규모로 확충하기 어렵다.

향후 예산과 인력확충은 정부와 지자체들을 설득하고 여러 관련기관·단체 관계자의 지원과 협조를 얻어 점진적으로 늘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회에서 법 개정 등 후속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광주 서구을 양부남 의원이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7월1일자로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국가폭력의 가해주체는 국가인만큼 운영비 전액을 국가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법 개정은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측면과 정부의 현실 인식 상황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 결정될 사항이기에 합리적으로 처리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후 센터 역량이 높아진다면, 직접적인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치유 이외에 대규모 사회적 참사에 따른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치유도 업무 영역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국가폭력 트라우마와 재난·사고 트라우마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대부분의 국가폭력은 발생 배경이 정치적 상황과 연관성이 있다. 국민의 보호자이며 안전을 지켜줘야 할 국가가 도리어 폭력을 가했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안전한 보호막이 상실됐다는 극도의 공포감과 고립감의 심각한 특성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피해자가 간첩, 빨갱이, 폭도로 낙인찍히며 오히려 중대 범죄자로 규정돼 왔다.

이러한 사회적 낙인은 사회와 지역공동체로부터 적대적인 시선을 받고 따돌림과 불이익을 당하게 만들기 때문에 일상의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어렵게 만든다.

국가폭력은 국가라는 거대권력의 폭력에 의해 사건의 진실은 당대에는 철저하게 은폐된다.

국가폭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트라우마적 사건은 공적인 조사와 수사를 통해 사건이후 짧은 시간내에 그 실체가 대부분 드러나고 당해 사건의 가해자를 찾아 처벌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심각한 수준으로 깊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는 지속적이고 반복되는 양상으로 거의 예외 없이 복합적 트라우마로 발현된다.

그 여파로 교육기회 상실, 구직 제한, 가족관계 균열, 사회적 고립 등으로인한 2·3차 피해, 알콜 의존 등으로 고통스런 일상을 살게 되고, 트라우마가 후세대에 전이돼 그 고통이 대대로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



-센터 향후 운영 방향은.

△국가폭력 피해에 관한 많은 조사연구에서 밝혀졌듯 국가폭력은 피해당사자 뿐 아니라 그 가족, 그리고 사회 공동체 전체에 트라우마를 남긴다. 또한 피해자들은 심리·신체·사회적으로 중첩된 고통을 지니고 있다.

이에 피해당사자와 가족, 사회공동체의 트라우마에 대한 전방위적 치유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개개인에 적용되는 기존의 의학적 모델은 물론, 사회적 편견과 부당한 비난을 바로잡는 역할 역시 중요하다.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는 시간이 대단히 오래 걸리는 만큼 중장기 계획을 세워 시기별로 적절한 치유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피해자 중심의 개별화된 치유는 물론 피해자와 여러 사회적 행위가 함께하는 새로운 통찰도 필요하기에, 사회가 공감하고 연대하는 치유모델을 정립하는 일에도 노력하겠다.



-국가폭력 피해자 트라우마 치유에 대한 전문성 확보 방안은.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는 만성화되고 복합적이라 서비스 제공이 대단히 어렵다. 그 상처와 아픔이 크고 깊어 치유가 쉽지 않고 시간도 상당히 오래 걸린다. 피해자들을 치유하려면 이들이 살아온 삶을 따뜻하게 수용하고 그 트라우마를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끊임없이 직원의 상담과 치유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일반적인 트라우마 치유가 아닌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경험이 있는 전문인력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기관은 시범사업으로 운영했던 광주트라우마센터와 제주4·3센터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폭력 사건마다 전개과정과 당사자와 가족들의 증상과 반응이 각각 다른데다 외국에서 도입된 트라우마 치유 기법이 적용되지 않는 한국인의 고유한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피해자 특성에 따른 치유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시범사업들의 효과를 면밀히 살펴보고, 기존 등록회원들의 욕구조사를 실시해 집단 프로그램 표준 매뉴얼을 제작하겠다.



-시민께 한 말씀.

△1980년 5월 광주는 뜨거운 여름과 차가운 겨울이 동시에 있었다. 그 혼돈의 계절 속에서 광주는 우리가 지금 당연하다고 누리는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광주공동체는 아픔의 공동체였고, 이제는 치유의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광주는 5·18민주화운동의 자랑스런 역사를 가진곳으로,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가 광주에 설립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개인이 치유되려면 가족뿐 아니라 사회공동체의 지지와 격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서로를 향한 따뜻한 관심과 위로의 말 한마디가 치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시민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자가 되는 그 길에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가 함께 하겠다.

사진=김태규·글=길용현 기자



약력

△행정안전부 의정담당관

△강원도 기획조정실장

△행정안전부 예방안전정책관

△부마민주항쟁보상지원단장